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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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로(蛙利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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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대 [lyd430] 쪽지 캡슐

2015-02-20 ㅣ No.83974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와이로(蛙利鷺)

 

일처리를 위해 뒷거래를 한 적이 있습니까? (와이로를 쓴적이 있습니까?)

蛙利鷺 / 唯我無蛙 人生之恨 (와이로/ 유아무와인생지한) "오직 나는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란 뜻입니다.
고려 말의 유명한 학자인 이규보(李奎報)선생께서 몇 번의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하고 초야(草野)에 묻혀 살 때 집 대문(大門)에 붙어있던 글입니다
.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
요행(僥倖)히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
그런데 그 집(이규보)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을 궁금하게 한 거죠
.
’오직 나는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智識)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안 잡혔죠.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먹으면서 주모(酒母)에게 외딴집(이규보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
그는 과거(科擧)에 낙방(落榜)하고 마을에도 잘 안 나오며,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소리를 들었지요
.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發動)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습니다
.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 해서 면담(面談)을 신청(申請)했죠
.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이란 글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
바로 "3일 후에 노래 시합을 하자"는 거였다
.
백로(白鷺)를 심판(審判)으로 하고서...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
노래를 잘 하기는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하다니, 하지만 월등(越等)한 실력(實力)을 자신(自信)했기에 시합(試合)에 응()했다
.
그리고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白鷺)한테 갔다 주고 부탁한 거다
.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白鷺)의 판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白鷺)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말은, 이규보(李奎報)선생이 임금한테 불의(不義)와 불법(不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겼다.
() : 개구리 와. () : 이로울 이. () 해오라기 로. 백로 로

이규보(李奎報)선생 자신(自身)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實力)이나 지식(智識)은 어디 내놔도 안 지는데 과거(科擧)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거다
.
돈이 없고, 정승(政丞)의 자식(子息)이 아니라는 이유(理由)
...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白鷺)한테 상납(上納)한 개구리 같은 뒷거래가 없었기에 번번히 낙방(落榜)하여 초야(草野)에 묻혀 살고 있다고
...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선생의 품격(品格)이나 지식(智識)이 고상(高尙)하기에, 자신(自身)도 과거(科擧)에 여러 번 낙방(落榜)하고 전국(全國)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臨時) 과거(科擧)가 있다 해서 한양(漢陽)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궁궐(宮闕)에 들어와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다 한다

과거(科擧)를 보는 날, 이규보(李奎報)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準備)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試驗官)이 내 걸은 시제(詩題)
 
唯我無蛙 人生之恨"이란 여덟 자였다고 한다
.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 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선생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써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와이로 (蛙利鷺/唯我無蛙人生之恨)란 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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