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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이후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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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john1004] 쪽지 캡슐

1999-06-04 ㅣ No.212

[동아 뉴스 +}

■시네마스코프/‘쉬리’이후 한국영화

한반도 ‘음모’단골메뉴로

 

    '포스트-쉬리' 한국 영화들의 한 흐름은 한반도의 민감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5월1일 개봉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감독 유상욱)와 15일 개봉한 '간첩 리철진'(감독 장진), 그리고 여름에 개봉될 '유령'(감독 민병천)이 모두 우리나라를 둘러싼 '음모'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는 영화들이다. 멜로와 공포를 거쳐 한국영화들이 도달한 곳이 리얼리즘이 아니라 블록버스터의 배경으로서 한국이긴 하지만,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일상이라는 점에서 우리 관객들에게는 매우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쉬리'의 총격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것이 로스앤젤레스가 아니라 여의도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일제시대에 군국주의자 하야시가 중앙박물관 아래에 한반도의 정기를 흐리는 철심을 박아놓았고 이 설계에 참여한 시인 이상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시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는데서 출발한다. 박정희대통령이 안기부 요원으로 하여금 이를 추적하게 하던 중 살해당함으로써 실패하고, 1999년 이상의 시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결국 이 철심을 무너뜨리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간첩 리철진'은 남한에서 유전자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수퍼돼지를 가져가기 위해 간첩이 남파된다는 이야기. 코미디이긴 하지만 남과 북 권력층 사이의 비밀 거래를 설정하고 그 사이에서 희생되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쉬리'와 근접해 있다. '유령'은 한국이 핵잠수함을 보유한데 위기감을 느낀 미국과 일본이 이를 폭파시키도록 하자, 이 배의 국수주의자 부함장이 내부반란을 일으키고 핵미사일을 일본에 발사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영화들이 가진 기본적 설정은 베스트셀러 '동해' '하늘이여 땅이여'와도 매우 비슷하다. 일련의 대중영화와 소설의 공통점은 답답한 현실의 출구를 현실 '밖'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서울 한복판에 박힌 철심은 영화에서도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의 고통과 악의 근원이 마치 이 철심 때문인 것처럼 끌고 나간다. '유령' 역시 냉전시대의 논리를 따라 핵 보유 자체가 곧 선이며 국력인 듯 묘사한다. 영화적 논리로도 여기 저기에서 허점이 드러나지만 경제위기로 자존심을 상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공감하게 된다. 이런 발상의 끝은 '강력한 힘'에 대한 동경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가 박정희 대통령을 국운을 살리기 위한 민족주의자로 설정한 것이나 '유령'이 박정희, 전두환전 대통령들이 자주 국방을 위해 잠수함 개발을 결정했다고 전제한 것은 매우 위험스런 발상으로 보인다. '간첩 리철진' 역시 유전자 조작 기술로 식량무기를 갖게 된 남한의 우월한 지위를 보여준다.

 

몇 년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음모이론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음모 이론을 담은 영화들이 잇따라 기획되고 있다. 음모이론은 그 자체로 흥미있을 뿐 아니라 표면적인 현상 뒤에 숨어있는 권력의 구조를 분석하는 또다른 눈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으로 그것은 현실을 은폐하는 환상이 되기도 한다. 한반도를 소재로 한 이 음모적 블록버스터들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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