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9일 (화)
(녹)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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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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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희 [korall] 쪽지 캡슐

1999-07-16 ㅣ No.228

영화 <바스키아>를 보고 1. 반복, 그러나 늘 같지는 않은... H를 떠올린다. 그가 아직 학생이던 시절, 도서관과 집만을 오갔더랜다. 자판기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어느날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묘한 생각이 들더랜다. '나는 매일 거의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같은 벤치 에 앉아 그것을 마시며 같은 쓰레기통에 그것을 버리는구나!' 습관이 되어버린 일련의 자기 행동을 깨달은 그는 이것을 기록하는 방법 이 없을까...궁리하다가 한가지 방법을 찾았댄다. 그 방법인 즉, 맨마지 막 단계를 바꾸는 것이었댄다. 어떻게? 같은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쓰레기통으로 던져질 종이컵을 수습 하여 복사기에다 그것을 들이미는 것이었댄다. 이렇게 사십여일을 반복 하여 그것을 또 책으로 묶었댄다. 다 만들고 나서 쭈욱 흝어보니 매일 반 복같기만 하던 그것이 다 그렇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댄다. 종이컵의 찌그러진 모양이나 이빨자국이나 그런 것들이 조금씩 달랐드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무척 뿌듯한 기분으로 그 이야길 해주었는데, 그렇 게 챙기지 않았으면 그냥 사라져버렸을 하루의 어느 부분이 그 책속에 흑 백의 종이컵속으로 고스란히 저장되었을 거란 생각때문이 아니었을까. H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화가가 앤디 워홀이었다. 특히 코카콜라병을 반 복적으로 그려놓은 그림을 좋아했다. 모두 같은 콜라병인 것 같지만 자 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고 했던가. 2. 변형, 그러나 늘 다르지는 않은... 낯선 여행지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건물외벽에 온통 스프레이로 그 려놓은 낙서들을 발견한곤 했다. 기형적으로 그려진 글자들, 해골들 그 리고 간혹 눈에 뜨이게 좋다 싶은 그림들까지... 건물의 건물다움을 접어 버린 일련의 행위들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것을 처음 보았을때는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EVERLAST'로고가 새겨진 트렁크와 권투 글러브를 끼고 X자 모양으로 가슴을 가린 바스키아가 흑백으로 서 있고, 뒤로 붉은 글씨로 장난스럽게 영화 관련 내용을 적어놓은 포스타가 있다. 껄렁껄렁 길을 걷다가 바지 뒷춤에서 스프레이나 두꺼운 백묵으로 아무데나 글을 적어놓던 그를 생각 하면 이 포스타 역시 그를 닮아가고 있다. 예술의 흐름을 보면 새로운 물결은 늘 이전의 낡은 것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뒤에 그 역시 낡은 것으로 퇴짜를 받을지라도... 영화 의 서두에 르네 리카드는 말한다. '예술 시장을 외면한 반 고흐의 창작 이 오늘날에는 바보같은신화일 뿐'이라고. 바보같은 신화 속의 인물이 되 기 싫었던 까닭일까. 영화 속의 주요 화가들은 살아서 대중들의 시선을 끈다. 주변 무리들을 끌고 다니던 앤디 워홀도, 엽서 몇장으로 혹은 마 약가게의 그림 한점으로 시작하여 뉴스의 초점이된 장 미쉘 바스키아도 그렇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혼이든 아니면 상업적이든, 그들은 살아있는 스타였다. 여기에 '자신이 마흔살까지 유명해지지 않았지만, 대신 그동안 성장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전기공의 이야기는 또 다 른 여운을 남긴다. 새로운 물결을 휩쓰는 사람이 있다면 묵묵히 이전의 것을 일구어나가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은 환 기만으로도 족할 것이고 이전의 것은 익숙함만으로 족을 것이므로... 그 리고 그 새롭다는 것이 언제까지나 새로울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에 셔의 표현처럼 책속에 틀어밖혀있다가 어느 사이 책 밖으로 뛰쳐나오고, 언제인가는 다시 책속으로 들어가는 도마뱀 같아 보인다. 3. 그리하여 영화는... 쥴리앙 슈나벨 감독이 바스키아를 좋아한 화가였던지, 영화는 바스키아 에게 꽤 우호적이다. 공원 구석의 종이박스에서 걸어나온 바스키아가 이리 저리 그림을 그려나 가는 모습, 사랑스런 지나와의 관계, 성공한 이후의 모습들. 마침내 워홀 의 죽음을 설퍼하며 울다 어머니를 찾아 정신병원으로 가고, 마지막 베 니의 차를 타고 유영하듯 거리를 달리는 모습들이 모두 예쁘게 그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지저분한 운동화를 질질 끌고 다니는 그가 왜 더럽다거나 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까. 바스키아역의 제프리 라 이트가 실제의 바스키아 보다 더 유연해 보인 탓도 있을 터이다. 기대했던 대로 앤디 워홀역의 데이빗 보위는 어떤 부분에선 혀를 내두를 만했다. 특히 바스키아와 함께 말을 두고 논쟁하는 장면에서 바스키아가 망쳐놓은(?) 그의 그림을 볼 때 조신하게 앞으로 나와 약간 비스듬한 포 즈로 오른손을 허리에 올리는 모습이라니... 특히 내 눈길을 끈 인물은 바스키아 무명시절 친구인 베니역의 베니치오 델 토로였다. 스타가 되어 유명세를 타는 것과 그것의 허상을 다 아는 그는 마약에 찌들어 눈밑이 움푹들어가 있었는데,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 의 모습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를 보며 문득 떠오른 것은 어 린시절보던 '용감한 형제'에서의 레이프 가렛이 나이를 좀더 먹고 살이찌 면 저렇게 보이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영화속을 흐르던 음악 또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직도 두곡이 짠하게 남는데, 그것은 성공 이후의 바스키아가 이전에 그 렸던 자신의 작품을 뜯어가는 깡패들에게 맞아 쓰러졌을 때 흐르던 소프 라노의 아리아와 앤디 워홀의 죽음으로 생전의 비디오를 울면서 바라보 는 장면에서의 굵은 저음의 노래다. 언제인가 한 번쯤을 들어보았음직한 이 곡들이 그 장면들을 보다 진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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