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7일 (수)
(녹)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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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신에 담긴 따스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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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9-07 ㅣ No.4542

 

                   털신에 담긴 따스한 약속

                                                                          

어느 날 이른 아침 요란한 벨소리에  문득 잠이 깼다. 문을 열어 보니  어머니가 한 손에 보따리를 들고 서 계셨다. 막내딸 갖다 주려고 어젯밤 늦도록 미숫가루를 만든 어머니는 새벽 첫차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오신 것이었다.  순간 나는 눈시울이 빨갛게 젖어 들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유난히 몸이 약했던 나를 위해 손수 찹쌀가루를 말려서 빻은 미숫가루를 시원한 얼음물에 타주시던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가 타주신 미숫가루는  늘 먹던 맛과는 달랐다.

 

’이 한 모금을 딸에게 맛보게 하려고,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어머니는 분명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이곳까지 오는 차를 간신히 타셨겠지...’

 

항상 멀리 집 떠나는 일을 두려워하던 어머니는 우리집이 남편 직장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 올 때에도 한숨을 내쉬며 걱정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발을 내디디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더 저려 왔다. 어머니를 터미널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택시를 멈춰 세워 내리고 말았다.

 

우리 가족은 처음부터 어머니와 딸 셋이 전부였다. 내 위로  언니 둘이 있는데 우리 세 자매는 한 뱃속에서 나왔지만 아버지가 다 달랐다. 그것은 어머니의  어쩔 수 없는 직업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여덟 살 되던 해 외할머니가 돌아가자 외할아버지는 새할머니를 맞이하셨다.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웠던 그 시절, 완고하셨던  할아버지는 "여자가 배워서 무엇에 쓰느냐" 며 어머니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 글을 깨우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어머니는 집안일과 밭일로 고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몇 년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새할머니는 동네 아주머니 소개로 어머니를 남의 집 양녀로 보냈다. 어머니는 호미 들고 밭에 나가는 대신 예쁜 옷을 입고 학교에도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를 기다린 것은 따뜻한 가정이 아니라 독한 술과 난폭한 남자들이었다. 하루아침에 술집 여인이 되어  버린 어머니는 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그늘진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 세자매가 하나둘 태어났는데, 어머니 자신도  세 딸의 친아버지가 누군지 몰랐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어머니는 우리 세자매의 앞날에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걸림돌이 될까 봐 우리를  양녀로 보내기로 마음먹으셨다. 큰언니는  식당을 경영하는 집 양녀로,그리고 나는 가축병원을 하는 양부모님 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어머니의 곁을 떠난 나는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무척 애썼다. 아들만 둘에 딸이 없었던 양부모님은 처음 몇 달 동안은 자상하게 잘 대해 주셨다. 그러나 차츰 나는 몸이 약한 양어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에도 나는 내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빨랫감을 손을 호호 불어 가며 빨았고, 넓은 집안  곳곳을 청소한 뒤에는 부리나케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눈치밥을 먹으며 자라던 나는 묻는 말 외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 소심하고 예민한 아이로 변해 갔다. 그러다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소변을 가리지 못해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리워질 때면 가끔씩  술집을 찾아가 어머니를 만났다.  때로는 어머니가 양부모님의 눈을 피해 날 찾아오기도 하셨는데, 진눈깨비가 내리던 쌀쌀한 어느 겨울날이었다.어머니는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근처 구멍가게로 데려가더니 따끈한 단팥 호빵 하나를 사주시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찢어진 털신 사이로 나의 작은 발이 꽁꽁 얼어붙은 걸 본 어머니는 자신을 원망하며 끝내 힘없이 주저앉으셨다.

 

어머니는 꼭 데리러 올 테니 조금만 참고 지내라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새 털신 한 켤레를 쥐어 주고는 희미하게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그날 밤 나는 털신을 꼭 껴안은 채 밤을 지샜다. 털신에서 어머니의 따스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쓸하게 사춘기를 지내던 나에게도  열일곱 살이 되자 따스한  봄날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고생하신 끝에 우리 가족이 다시 한 집에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그 일을 그만 두시고 식당 일을 하며 세 딸을 모두 시집 보냈다. 그리고 어머니는 또 홀로 남으셨다.

 

작년에 결혼을 해 지난 10월에 엄마가 된 나는 딸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내가 걸어갈 어머니의 길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  동안은 어머니와 나의 관계를 부정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던 날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과거의 그런 내 모습이 오히려 부끄러워진다.

 

어머니의 사랑은 감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머니의 인생을 사랑하고, 어머니의 아픈 상처까지도 사랑하고 싶다.

 

몇주일 전, 어려운 가운데서도 늘 우리 세자매를 보듬으려고 눈물 마를 날 없었던 어머니가 환갑을 맞으셨다. 어머니의 환갑날에 두 언니네 식구들과 작은 잔치를 벌였는데,  손녀딸을 안고 함박 웃음을 지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말을 문득 전해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 고마워요."

 

                           김숙경 님 / 전남 여수시 경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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