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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벽을 간질이다 - 윤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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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20-11-05 ㅣ No.141921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72)

북한산의 뷰포인트 ‘숨은 벽 능선’. 인수봉과 백운대 뒤쪽에 숨어서 서울 도심 쪽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아 숨은 벽이라 부른다. 사진은 인수봉 정상. [중앙포토]



숨은 벽을 간질이다 

- 윤경재

 
평생을 북면한 채 마음 감추고 산 바위벽
엉거주춤 네 발로 매달려 간질밥을 먹이다
 
눈구멍 깊은 무심한 해골바위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출렁
슬며시 움찔거린다
 
하루해가 산 정수리에 비낄 즈음
숨은 벽의 크고 훤한 이마는
조신한 배경, 비스듬한 빛을 비춰
있는 모습 그대로
땀 흘린 누구나 그때의 주인공이 된다
 
오름보다 가파른 하산 길
고개 숙여 전후좌우 살피라고
바위도 때로는 땀을 흘린다고
공간 주름 이야기 하나쯤 담아가라고
그믐달 같은 두 귀를 간질인다
 
약수 한 모금 탁족으로 설핏 따라 웃는다
   





해설


등산을 하다보면 유난히 인물 사진이 배경과 어우러져 멋지게 나오는 곳이 있다. 배경이 멋진 곳에서는 인물이 죽고, 인물을 살리다보면 배경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두 요소가 잘 어우러지는 곳을 찾기가 제법 어렵다. 빛이 어떤 방향으로 비추는지에 따라 인물의 모습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영화나 결혼식 사진을 찍을 때에는 보조 조명을 갖추어 대상 인물에게 알맞은 빛을 인공으로 비추어 준다. 그래서 노련한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경험적으로 조명의 중요성을 깨달아 조명기사를 각별하게 대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인물사진을 찍을 때 목적에 따라 조명 방법을 달리한다. 주광과 보조광을 적절히 혼합하면 인물 외면의 특징과 내면이 말하는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 사진에서 인물이나 대상이 말하는 모습을 담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고수일수록 대상의 속마음을 이끌어내는 실력이 남다르다. 사진을 감상할 때에는 작가가 어떻게 내면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는지 여부를 읽는 게 중요하다. 사진뿐만이 아니라 그림도 빛의 세기와 각도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렘브란트는 진실이란 항상 이면에 가려져 있기에 찰나의 표정을 통해서만 그 본질이 잠시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가 찾아낸 건 빛의 각도이다. [사진 pxhere]

 
한 공간에서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각도는 속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빛과 어둠의 마술사라고 일컫는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 그 내용을 실감할 수 있다. 그는 초상화에서 인물의 개성과 심리를 담아내는데 탁월했다. 대상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와 그 변화를 파악해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이런 회화방법을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고 부른다.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 ‘해부학 강의’, ‘돌아온 탕자’ 등을 보면 각 인물이 말하는 내면의 모습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어둑어둑한 배경에 일부분만 밝게 빛나는 대상은 그림자와 대조를 이루면서 무언가를 말하는 듯하다.
 
렘브란트는 진실이란 항상 이면에 가려져 있기에 찰나의 표정을 통해서만 그 본질이 잠시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는 찰나의 표정을 ‘찰나의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포착하려 하였다. 그가 찾아낸 건 빛의 각도이다. 은은한 후면과 후상방 측면에서 비추는 조명이 이를 말한다. 렘브란트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조명을 일명 ‘렘브란트 조명’이라 부른다. 인물의 뒤쪽과 위에서 은은히 퍼지는 렘브란트 조명은 영화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어 주인공의 분위기와 모습을 부각시킨다. 비비안 리, 그레타 가르보 등 스타들의 이미지를 살리는 데 활용되었다. 로맨틱하고 영묘한 성품을 극적으로 살렸다.
 
북한산에서 단풍이 곱기로 유명한 뷰포인트는 ‘숨은 벽 능선’이다. 인수봉과 백운대 뒤쪽에 숨어서 서울 도심 쪽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아 숨은 벽이라 부른다. 북쪽을 향해 서있기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일찍 해가 떨어진다. 사실 북면이란 단어는 신하가 남면한 임금을 향해 꼿꼿하게 서서 국사를 나누고 충언을 바친다는 의미가 담겼다. 능선 전체가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진 숨은 벽 능선이야말로 북면이란 말뜻에 합당한 장소이다.
 
밤골을 들머리로 해 오르면 아주 가빠른 사면과 암반을 만나게 된다. 맨손으로 바위를 타는 릿지 코스로도 일품이다. 우회로도 마련되어 힘들지만 초보자도 오를 수 있다. 숨은 벽을 지나 인수봉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이 외줄기라 요즘 휴일에는 정체 현상이 빚어진다. 북한산 정상부근에서 유일하게 만나는 천연약수터도 숨은 벽을 지난 이곳에 있다. 물맛이 아주 달고 시원해서 좋다.
 

북한산 의상능선에서 바라본 백운대, 인수봉, 노적봉, 만경대. [중앙포토]

 
숨은 바위벽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올라 땀을 식히며 사진을 찍으면 언제나 멋진 사진을 건진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사진 조명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나니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후가 되면 인수봉 쪽에서 뜬 해가 백운대 너머로 기운다. 그러면 주광인 햇볕이 후상방에서 비추는 렘브란트 조명효과를 낸다. 거기다가 바위에 반사된 빛이 보조광 역할을 해 얼굴 전체에 비추어 그림자도 적게 만든다. 그야말로 인물사진을 찍는 명당자리가 저절로 된다. 더군다나 웅장하고 우람한 바위 모습은 사진에 강한 힘을 실어준다. 인물을 당겨 찍어도 전체 배경을 다 실어도 언제나 살아있는 인물의 생생한 모습과 로맨틱한 분위기의 사진을 건질 수 있다. 힘들게 올라왔다는 뿌듯한 내면의 자존감도 한몫을 한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셔터 소리와 떠들썩한 웃음소리는 숨은 벽 공간이 주는 희열의 소리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공간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다. 집을 지어도 가능하면 공간 배치에 합당하게 지으려고 노력하였다. 빛과 바람, 물의 방향을 고려해 터를 잡았다. 풍수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네 집 구조는 먼저 주춧돌을 박은 뒤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다. 기둥 구조는 지붕을 받치기 위한 벽이 필요 없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뻥 뚫려 있는 게 자연스럽다. 벽이 힘을 받는 구조가 아니기에 문과 창을 내기도 쉽다.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게 아주 자연스럽고 쉬웠다. 그러므로 고궁 같은 우리 건축물의 가치를 진정으로 느끼려면 사실은 내부에 들어가 밖을 바라보는 시각을 체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특히 외국인이 보기에 우리나라 건축물은 아기자기하고 조금 작은 느낌이 든다. 밖에서만 바라보아서는 감흥이 부족할 수 있다.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해 출입을 막아야 한다면 이젠 뛰어난 IT 시스템을 사용하여 내부에서 외부 전경을 느낄 수 있게 VR 증강체험을 하도록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 적극적으로 연구할 과제이다.
 
서양 건축물은 벽이 지붕을 받치므로 사방이 꽉 막힌 구조를 이룬다. 바깥 경치를 보려고 창문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진다. 그래서 창이 아주 적고 작다. 서양 건물은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고딕 성당 같은 아주 비싸고 호화로운 건물에만 창을 낼 수 있었다. 그것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외부가 차단 된 불투명한 유리창이다. 건물 자체가 목적이 되었기에 서양건축물은 아주 웅장하고 내부 장식을 화려하게 꾸몄다.
 
공간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확 터진 공간에 가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낡고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와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집콕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러다간 사회구성원이 점점 코로나블루로 고생할 수밖에 없다. 해서 안전한 방역지침을 따르면서 자주 넓은 지역에 나가 공간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되새겨야 하는지 새삼 상기하고 돌아와야 하겠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https://news.joins.com/article/23912729

[출처: 중앙일보] [더오래]북한산서 인물 사진 찍기 좋은 명당 자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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