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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_ 김건태 루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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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시는 주님 오늘 우리는 복음 저자이며 사도인 마태오의 소명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공관복음인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에도 등장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엔 소명 대상이 레위로 불리는 반면, 마태오 복음서엔 마태오로라는 이름이 나오며, 나아가 그가 죄인으로 취급되던 세리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복음 저자들이 사도로서 흠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진술하기를 피하려 했던 세리로서의 마태오를, 마태오 본인은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을 밝히려는 의도에서, 자신이 본디 세리였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서 마태오는 온 마음으로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임을 힘차게 선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리 마태오를 부르신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따라라”하는 전격적인 부르심에,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릅니다. 지난 월요일 말씀을 통해 묵상했던 대로, 투명하게 부르시는 예수님과 이 부르심에 명료하게 응답하는 마태오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하고 마음에 새깁니다. 마태오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부르심을 받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전적으로 부르시는 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부르심 당시의 마태오는 거룩하신 주님의 부르심에 걸맞지 않은 처지에 있던 사람입니다. 로마제국의 치하라는 정치적 상황에서 모든 세금은 로마제국으로 흘러 들어갔기에, 세리라는 직업 자체가 유다인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착복이나 횡령 등으로 어느 직업보다도 부정의 위험이 큰 직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요?” 하는 이의 제기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절차였습니다. 율법 준수에 매여 있던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알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세리와 죄인들을 멸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상종하는 것조차 피하였습니다. 더구나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튼튼하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이 아니라, 치유를 간절히 바라던 병든 이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음을 밝히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 바리사이들을 의인으로 보고 세리와 죄인들을 죄인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문자 그대로 바리사이들이 아니라 세리와 죄인들을 부르러 오신 분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은 없다는 원칙을 감안한다면, 따라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다는 대원칙을 전제로 한다면, 문제는 자신을 의인으로 자처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쉽게 터득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의사이신 예수님이 정말 필요한 사람은 자신을 병든 이 곧 죄인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아니라, 튼튼한 이 곧 의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가르침과 이끄심 덕분에 영육 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우리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봉사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