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마태 9,10)
존재를 받아들이는 식탁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아해하거나 불편해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과거도, 자격도 따지지 않고
모두를 조용히 식탁에 초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떨까요?
얼마 전, 한 지인이 자신의 실수를 털어놓으며
"나 같은 사람이 성당에 와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혹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식탁에 함께 앉히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요.
왜 우리는 환대를 망설일까?
어릴 때부터 우리는
“착해야 사랑받는다”,
“남들보다 앞서야 인정받는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자연스럽게 평가하고, 경계 짓고,
먼저 마음의 문을 닫는 법을 익힙니다.
상처와 두려움도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듭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다가 내가 다치진 않을까?
과거의 아픈 기억이 나를 움츠리게 합니다.
때로는 통제에 대한 집착도 나를 붙잡습니다.
모두를 환대하면 내 기준이 흔들릴까,
질서가 무너질까 두렵습니다.
“수용이란 모든 걸 좋아하거나 동의하는 것”이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사실, 수용은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
모든 것을 인정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이는
바로 ‘나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작은 용기, 환대의 시작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삶의 가장 깊은 사랑과 자유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 나는
만나는 사람 중 한 명을
“평가 없이 바라보기”로 선택해봅니다.
그 사람의 말투, 옷차림, 행동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존재”로 바라봅니다.
예를 들어,
늘 무뚝뚝한 동료,
혹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가족을
하루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볼 수 있습니다.
또는
완벽하지 않은 내 방,
어설픈 내 모습을
숨기지 않고
작은 초대라도 해봅니다.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 것,
그것이 환대의 시작입니다.
복음의 식탁 앞에서
예수님처럼
오늘 내가 만나는 한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을
판단 없이 초대하는 연습을 다짐해 봅니다.
“당신도, 나도
존재 그 자체로
함께 앉을 수 있는 식탁이기를.”
주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 마음을 주님 앞에 내어 놓습니다.
작은 것부터 수용하고 환대하는 용기를
저에게 허락해 주소서.
예수님의 식탁처럼,
저도 누군가와 나 자신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