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3일 (월)
(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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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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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10-11 ㅣ No.185429

2025.10.11.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요엘4,12-21 루카11,27-28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사랑이 답이다>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 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부터 하루종일 내린비가 지금 한밤중에도 두런두런 소리내며 내립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강론을 쓰는 거룩한 침묵의 밤이 참 좋습니다. 참행복을 느끼며 더욱 거룩한 밤을 사랑하게 됩니다. 어제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발견한 말씀카드 내용도 생각납니다.

 

“주님, 제 입에 파수꾼을 두시고,

 제 입술에 문지기를 세우소서.”(시편141,3)

 

참으로 하느님을, 침묵을, 기도를, 말씀을 사랑할 때 저절로 말조심에 참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옛 현자 다산의 말씀입니다.

 

“남의 하루를 평가하려면 나의 평생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남을 비판할 때 보이는 모습이 나의 진정한 품격이다.”

 

이웃에 대한 참된 존중과 사랑이 있을 때 타인에 대한 올바른 평가이겠습니다. 교황청 홈페이지에서 읽은 레오 교황의 잠언성 짧은 말마디도 좋습니다. 날마다 읽어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을 훌륭히 뒤따르고 있는 레오 교황이요 가톨릭교회의 복입니다.

 

“믿음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분리할 수 없다.”

“믿음과 이성은 서로를 지지하고 보완한다.”

“종교의 자유는 진리를 찾고 살아가는데 필수적 요소이다.”

수도자들에게 주신 다음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잦은 숨겨진’(often-hidden) 날마다의 행동들은 특권을 지닌 증거를 준다. 예수님을 따름의 놀라운 탐험!”

 

제가 70대 넘어서 즐겨 읽는 평전, 자서전, 회고록입니다. 하느님 탐구는 저절로 위인들의 탐구로 향하게 됩니다. 한국의 위대한 대통령을 꼽자면 양극단의 인물, 호오가 분명한 두분, 박정희와 김대중을 꼽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분의 공통점인 애국심에서는 일치합니다. 요즘 읽고 있는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평전>입니다. 

 

한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포항제철>이요, 애국자 박정희와 박태준의 신의와 신뢰의 결합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어제 읽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전설적이고 신화적 인물, 구상 세례자 요한 시인의 감동적인 <고독한 영혼을 위한 조시(弔詩), 진혼축(鎭魂祝)>을 나누고 싶습니다.

 

“국민으로서는 열여덟 해나 받든 지도자요

개인으로는 서른 해나 된 오랜 친구

하느님! 하찮은 저의 축원이오나

인류의 속죄양, 예수님 이름으로 비오니

그의 영혼이 당신 안에 고이 쉬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그가 지니고 떨쳤던

그 장한 의기와 행동력과 질박한 인간성과

이 나라 이 겨레에 그가 남긴 바

그 크고 많은 공덕의 자취를 헤아리시고

하느님, 그지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

설령 그가 당신 뜻에 어긋난 잘못이 있었거나

그 스스로 깨닫지 못한 허물이 있었더라도

그가 앞장서 애쓰며 흘린 땀과

그가 마침내 무참히 흘린 피를 굽어보사

그의 영혼이 당신 안에 길이 살게 하소서”

 

박정희가 권유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고문이나 장관직뿐 아니라 국립대학 총장직도 번번이 사양했던 무욕의 고결하고 청렴했던 구상 세례자 요한 시인입니다. “독재자에 조시를 바치다니!”라는 온갖 비난에 대해 구상은 “친구니까!”라고 단 한마디만 반응했다 하니, 참 의리있고 용기있는 매력적 인품입니다. 구상이 얼마나 하느님을, 인간을 차별없이 깊이 사랑했는지 깨닫습니다. 참된 사랑에서 나오는 참된 용기요 분별의 지혜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듯 사람을, 자연을, 수행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베네딕도는 정결을, 금식을 사랑하라 했고,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사랑하라 했습니다. 기도도 미사도 말씀도 침묵도 고독도 공부도 독서도 노동도 겸손도 정주도 순종도 섬김도...모든 수행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마음의 순수와 자유요, 이런 자유는 섬김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주님의 멋진 제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참행복이요 참 짧은 두절에 불과하지만 참행복의 비결을 담고 있습니다. 누구나에게 활짝 공평하게 열려 있는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잘난 이들을 보면 부러워하는 어머니 마음은 인지상정입니다. 예수님의 눈부신 업적을 체험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그 부러워하는 마음을 토로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이에 대한 지체없는 예수님의 답변이 만고불변의 살아 있는 진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8)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 있는 참행복이요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성인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오직 보시고 인정하시는 바, 당신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바 말마디 “오히려(rather)”입니다. 물론 나를 배었던 모태와 나에게 젖을 먹인 가슴의 마리아 어머니라서 행복하겠지만 이것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녀 잉태의 예고를 들었을 때, 또 십자가의 예수님을 팔에 안으셨을 때, 끝까지 시종일여, 말씀을 듣고 지킴에 충실했던 “예스맨(Yes-Man)” 마리아 성모님이기에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치유활동이 구마활동이 숱한 기적이 훌륭한 가르침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성모님처럼 끝까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말씀을 듣고 지키며 순종으로 일관했기에 <참행복>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두 임종어도 기억할 것입니다. 

 

“목마르다!”, 여전히 순종할 것이 남아있기에 그 아쉬움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다 이루어졌다.” 마지막 순종으로, 초지일관한 순종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임종어입니다. 더불어 누가 예수님의 참가족인가에 대한 주님의 답변도 오늘 복음과 일맥상통합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8,21).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주님의 현존이자, 생명이자 빛이자 영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고 말씀을 사랑하고 선택하여 자발적 기쁨으로 그 말씀을 듣고 지키면 참행복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새삼 <들음-묵상-기도-관상-실행>의 구조로 이뤄진 렉시오 디비나의 <선택-훈련-습관화>가 얼마나 참행복의 첩경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큰 성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각자 주어진 자기 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항구히, 우보천리의 자세로 말씀을 듣고 실행할 때 참행복의 치유의 구원이요 하늘 나라의 실현이겠습니다. 바로 요엘 예언자가 이렇게 살았을 때 내적풍요의 하늘 나라의 삶을 예고합니다.

 

“그날에는, 산마다 새 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젖이 흐르리라. 유다의 개울마다 물이 흐르고, 주님의 집에서는 샘물이 솟아, 시팀 골짜기를 적시리라....주님은 시온에 머무른다.”

 

바로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오늘이 바로 그날이요, 여기가 주님께서 머무르는 유다요 시온이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말씀을 듣고 지키는 수행생활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의인들아, 주 안에서 기뻐들 하라.

 거룩하신 그 이름을 찬양들 하라.”(시편97,1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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