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모든 성인 대축일  | 
						
|---|
| 
								
								
								 ‘공평(公平)과 형평(衡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평은 능력과 성과에 따라서 보수를 지급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공평이라는 원칙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능력과 성과를 인정하기에 사람들은 더 노력하고, 공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될 것이고, 적게 가진 자는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신앙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좋은 밭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 열매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갈밭, 가시덤불, 길가에 떨어지면 싹은 나지만 말라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성경 공부에 함께 하고, 주일미사는 물론 평일미사도 참례하고, 본당에서 마련한 피정이나 교육에 참석하는 신앙인은 영적인 기쁨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시련과 고난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깊고, 신앙의 샘이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가 이상과 꿈이 좋았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평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능력과 성과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형평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나 교회가 보호하는 것입니다. 비록 능력이 부족해도, 비록 성과가 없었어도 사람은 하느님을 닮았기에 그 인격과 인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신다.” 신앙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온 사람도, 오후에 온 사람도, 저녁에 온 사람도 똑같이 1데나리온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공평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차원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권은 모두 일인 일 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품위와 인격은 능력과 성과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도, 장애를 지닌 사람도, 한 때의 실수로 감옥에 있는 사람도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회는 능력과 성과에 따라서 공평하게 보상이 이루어지는 사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형평이 이루어지는 사회입니다. 공평이 없는 형평의 사회는 발전과 성장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형평이 없는 공평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왜 그분들을 기억하는 것일까요? 그분들이 행복했기 때문일까요? 그분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때문일까요? 저는 그분들의 삶이 우리가 보기에 행복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때문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주어진 길을 충실하게 걸어갔고, 감사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채우는 행복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행복은 제가 원하는 것을 채워서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행복은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감사하며 지낼 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행복은 마치 길과 같아서 내가 걸어가는 순간이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길은 가지 않으면 풀이 돋아나고, 없어지게 됩니다. 길은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오솔길이, 시골길이 되고, 차량이 다니는 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있을 때도, 보좌신부로 있을 때도, 본당신부가 되어서도, 교구청에 있을 때도, 외국에서 지낼 때도 그랬습니다. 제가 감사하면 감사드릴 일들이 생겼고, 제가 사랑하면 사랑받을 일들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해하니, 남들도 저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느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내가 감사하면, 지금 내가 사랑하면 바로 그곳이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행복도 그렇습니다. 원하는 것들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것이 행복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참된 행복을 이야기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이런 삶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삶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