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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위령의 날에 실천하는 보속과 기도는 사랑 실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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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12ㄴ)”
1)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위령의 날’은 그 영혼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기도하고 보속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위령의 날’의 기도와 보속은 ‘사랑 실천’입니다. <‘사랑 실천’이니까 ‘나 자신’을 위한 일도 됩니다.> 우리는 지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모든 것이 끝나버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는 곳이고, 하느님과 함께 완전하고 영원하고 참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인 성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그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연옥은, 희망 속에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 부족한 보속을 채우는 곳이기 때문에 ‘임시 거처’입니다. 그래서 연옥은 신앙생활의 목적지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지는 하늘나라뿐입니다. 우리가 연옥의 존재를 믿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즉 하느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지옥은 최후의 심판이 끝나면 영원히 소멸됩니다.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묵시 20,13-14).” 그래서 지옥도 심판 때까지만 존재하는 ‘임시 감옥’입니다.>
2)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다고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면, 그렇게 희망을 버리고 절망에 빠져버린다면, 삶이 곧 지옥이 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면, 연옥에서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은 삶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3) 산상설교의 ‘참 행복 선언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에 관한 가르침, 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채워야 하는 조건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옛날에는 ‘진복팔단’이라고 표현했는데, 하늘나라의 행복이 여덟 가지인 것은 아니고, 또 자격이 여덟 가지인 것도 아닙니다. ‘참 행복 선언 말씀’은, 사실은 하나의 행복과 하나의 조건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즉 ‘하늘나라에서 누리게 될 하나의 행복’과 그 행복을 얻어 누리려면 신앙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하나의 조건입니다. ‘마음의 가난함, 슬퍼함, 온유함,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 함, 자비, 마음의 깨끗함, 평화 실현을 위해서 노력함, 박해를 견디어냄’은 모두 ‘신앙인답게 사는 것’ 하나입니다.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이고, 같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여덟 가지나 된다고 부담스러워할 것도 아니고, 여덟 가지 중에 하나만 해도 된다고 말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마음의 가난함과 깨끗함을 실천하고, 온유함과 자비도 실천하고,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고, 박해를 받아도 인내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한 번에 그것을 다 실천할 수 있나?” 라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일들은 모두 하나로 일치되어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당연히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것, 위로를 받는 것, 흡족해지는 것, 자비를 입는 것, 하느님을 뵙는 것,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는 것은 모두 하늘나라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어 누리는 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 것일 뿐이고, 사실은 하나의 행복입니다.
4)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어떤 업적을 쌓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어떤 결과를 요구하신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의와 평화를 예로 들면, 예수님께서는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라고 말씀하셨을 뿐이지 정의와 평화를 실현시키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 하는 모든 일의 결과는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우리 위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할 뿐입니다. 그 결과는 하느님께 맡겨 드리면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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