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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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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간 월요일] 마태 8,5-11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주둔하던 로마군의 장교인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다가가 도움을 청합니다. 보통 도움은 더 강한 힘과 능력을 지닌 이가 그러지 못한 이에게 주는 것이지요. 세속적인 시각으로 보기엔 피지배국의 백성, 그 중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낮은 육체 노동자 목수의 아들보다는, 대제국 로마의 장교가 도움을 주는 편에 서 있다고 보는 게 당연할 겁니다. 그런데 그 장교가 직접 예수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원한다면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오게’ 만들 수 있는 자기 권력을 이용하여 예수님께 자기가 원하는 걸 해달라고 강요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대단한 능력을 지닌 분이라고 믿고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예제도가 일반화 되어있던 당시 상황에서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종들 중 하나를 위해 예수님께 부탁한 것은 그만큼 그 종을 아끼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부리는 사람을 언제든 다른 이로 대체할 수 있는 ‘부속품’처럼 여기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사랑할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지녔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런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그의 믿음이 그저 자기가 청하는대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여기는 ‘신념’으로서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의 청을 들어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또한 그분께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청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자기가 바라는대로 해달라고 떼쓰지 않고 주님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며 그분을 위해 한 발 물러설 줄도 아는, 겸손하고 속 깊은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와 같은 믿음을 지닐 수 있을까요? 먼저 무엇을 믿어야 할지에 대해 묵상해야 합니다. 막연히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건 참된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비신자들 중에도 신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 이들은 많지요. 그러나 그들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분께서 원하시는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가 아니라 그분의 ‘본성’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본성을 믿는가에 따라 하느님의 모습이 다르게 보입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하느님의 ‘정의’만을 믿으면 그분을 무서운 심판자로 여겨 피하고 숨기에 바쁘고, 구원으로부터 멀어지지요.
그러나 백인대장은 주님의 ‘자비’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유다인이 아니라도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청한다면 반드시 들어주실 거라고 여겼습니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주님이라면, 중병에 걸려 괴로워하고 있는 가련한 이를 그리고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당신께 간절히 청하는 자신을 절대 외면하지 않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랬기에 그 밖의 부수적인 것들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굳이 번거롭게 자기 집까지 같이 가시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선을 실현하실 거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부수적인 것들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라는 본질에만 집중하는 것! 그 외의 것들은 모두 하느님 손에 맡겨 드리고 따르는 것! 주님께서 ‘당연히’ 자기 청을 들어주셔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고 주도권을 그분께 내어 드리는 것! 이 점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백인대장의 믿음의 핵심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자기 집이 아니라 자기 마음 안에 모셨고, 그 결과 아끼던 종의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지요.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내 손아귀 안에 가두려고 들지 말고, 내 마음 안에 모셔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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