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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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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중에 후배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2024년 서품이니, 저하고는 33년 차이가 나는 신부님입니다. 눈빛이 맑고, 선명했습니다. 힘든 일은 디딤돌로 여기며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지구 차원의 ‘교리 골든벨’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0문제를 선별해서 나누어 주고, 그중에서 50문제를 시험에 낸다고 합니다. 1등에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패드’를 준다고 합니다. 참가한 모든 아이에게도 기념품을 준다고 합니다. 중국어를 좋아하고, 잘하는 신부님은 동창들과 3박4일 동안 하얼빈에 다녀온다고 합니다. 하얼빈은 가보지는 않았지만, 작년에 영화로 보았습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했던 장소입니다. 신부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시간이 빨리 가나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간답니다. 어느덧 34년이 지났어요.” 사제직에 대한 열정이 있는 신부님을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늘 오후에는 ‘ME’ 모임에서 알게 된 부부들을 만났습니다. 형제님은 신학생을 위해서 장학금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알게 된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미사해설과 독서를 하는 자매님은 주일에 미사를 4번 참례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는 유례가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들이 먼저 와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목말랐던 평신도들이 복음을 찾았습니다. 북경으로 가서 세례를 받았고, 성직자가 없이도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1784년 이렇게 단 한 명의 성직자도 없이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낌없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형제님, 늘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봉사하는 자매님을 보니 역시 평신도로 시작했던 한국 교회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우들이 바라는 사제의 모습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사를 정성껏 봉헌하고, 강론 준비를 잘하고, 고백성사를 미사 전에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라면 당연히 해야 할 소명입니다. 거인들의 발자취라는 책에서 각기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함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드럽고 약간은 우유부단했던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 정든 고향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도 하느님께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였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동생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였습니다. 섬세하고 욱하는 성격이었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습니다. 모세는 욱하는 성격에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부르셨지만, 소심한 성격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겁이 많아서 예수님을 3번이나 배반했던 베드로 사도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그런 베드로가 복음을 선포하니 세례를 받은 사람이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논리적이고, 직관적이었던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박해하였지만,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리와 신학은 바오로 사도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타고난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삶의 환경에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성격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성격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하고, 세상의 어두운 곳, 소외된 곳, 가난한 이, 병든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합니다. 타고난 성격이 내 신앙의 반석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 내 신앙의 반석입니다. 눈빛이 맑은 젊은 사제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묵묵히 주어진 길에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는 교우들이 있기에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오늘의 영성체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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