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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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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었던 동화가 생각납니다. 평소에 겁이 많던 토끼가 잠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도토리 하나가 나무에서 떨어졌습니다. 토끼는 지진이 날 준 알고 뛰어갔습니다. 여우가 토끼를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토끼는 지진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동네에 있던 동물이 모두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동물의 왕자 사자가 도망가는 토끼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뛰어가느냐?’ 토끼는 지진이 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자가 그럼 지진 난 곳으로 가보자고 했습니다. 동물들이 모두 지진 난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두운 밤, 한 나그네가 절벽에서 미끄러졌습니다. 그는 죽을힘을 다해 나무뿌리를 잡고 매달렸습니다. “하느님, 살려 주소서.” 간절한 기도 끝에 이런 음성이 들립니다. “그 뿌리를 놓아라.” 그러나 나그네는 놓지 못했습니다.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밤을 꼬박 지새운 뒤 동이 틀 무렵,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손만 놓으면 발이 닿을 만큼, 바로 아래에 땅이 있었습니다. 토끼에게 도토리는, 나그네에게 나무뿌리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는 순간, 판단은 흐려지고 삶의 길도 어두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려움의 문제를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파도 위를 걸어 예수님께 다가가던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두려워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손을 잡아 일으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왜 믿음이 없느냐? 왜 두려워하느냐?” 풍랑이 이는 배에서도, 제자들이 떨고 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께서는 삶의 근심과 걱정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 그러니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우리의 시선이 두려움에 머물면 반 잔의 물을 보며 “반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희망의 사람은 “아직 반이 남았다”라고 말합니다. 컵에 담긴 물은 동일하지만, 내 마음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것은 절망이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꽃이 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본향으로 가는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이 세상에서의 두려움과 걱정은 나를 영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진화의 긴 시간 속에서 인간은 ‘두려움’을 기억함으로써 생존해 왔습니다. 자연재해, 사나운 짐승, 독이 있는 벌레, 추위, 배고픔, 전쟁과 같은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은 두려움을 학습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두려움은 다른 차원입니다. ‘걱정, 근심, 불안, 초조’ 같은 내면의 파도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未得先愁失 當歡己作悲(미득선수실 당환기작비).” 아직 근심이 닥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쁨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몸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빛이 파동이 되기도 하고 입자가 되기도 하듯, 우리의 내면도 두려움으로 가득 차면 두려움의 방식으로 움직이고, 희망으로 가득 차면 희망의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체격이 크든 작든, 배움이 많든 적든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에너지입니다. 내가 사랑과 온유와 믿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비록 육신이 약해도 누구든지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두려움의 문은 닫혀 있었지만, 성령의 은총은 그 문을 열고 사랑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신 것은 우리가 빵 공장을 세우고 수상 스키를 타라는 뜻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초대입니다.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하라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으로 가득 찰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주셨듯이 우리 손도 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 마음속의 도토리 같은 작은 근심과, 나무뿌리 같은 걱정을 예수님께 맡길 수 있다면, 그 아래 우리를 안전하게 받쳐주는 하느님의 땅이 이미 펼쳐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근심과 두려움을 당신 사랑 안에서 내려놓게 하소서. 성령의 은총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어,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걷게 하시고 오늘도 당신께 맡기며 평화를 실천하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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