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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8일 (목)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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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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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6-01-06 ㅣ No.187233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자동차 창문을 열고 시속 100km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이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가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지구의 태양 주변을

도는 공전 속도는 어마어마합니다.

1초에 30km에 달합니다. 시속

100km의 소음을 이겨내지 못하는

우리인데, 훨씬 빠른 지구에 살면서

공전 소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자전, 공전 소음은

인간이 듣는 청력 범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참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문득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목이 마르면 수돗가에 가서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지요.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물을 사서 마신다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 다시

나타났다면서 놀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수를 사 마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것 역시 너무나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는다고 이를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하느님의 일은 어떨까요? 더 우리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을 갖고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일이

우리 곁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습니다. 이를 오늘

복음을 통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빵의 기적만을 보고

있지만, 빵을 주기 전에 하셨던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마르 6,34)라고

전해 줍니다. 영적인 배고픔의 해결이

육적인 배고픔의 해결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적인

배고픔은 육적인 배고픔이 해결되고

나서야 채우는 것이라고 하지요. 어쩌면

영적인 배고픔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많은 군중을

돌려보내자고 이야기합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마르 6,37) 예수님은 군중을 남으로

보지 않고, 책임져야 할 가족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을 사는 우리 역시

따라야 할 명령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배불리 먹이십니다. 앞이

잘 보이지는 않는 인간의 한계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일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인간의 한계

상황만을 이야기하면서, 못한다고,

할 수 없다면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을

너무 쉽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깜짝 놀랄만한 일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배고픔을 먼저 채울 수 있어야 주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큰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간이 존재하는 비결은,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표도르 도스토엡스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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