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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3일 (화)
(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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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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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1-12 ㅣ No.187369

* 오늘의 말씀(1/12) : 연중 제1주간 월요일

* 독서 : 1사무 1, 1-8

* 복음 : 마르 1, 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 <오늘의 강론>

오늘부터 연중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부터 복음은 <마르코복음>을, 독서는 <사무엘기>를 듣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첫 발설’로 시작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는 세 개의 내용으로 된 문장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신 일이 아무 때나 우연히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이전의 모든 시간이 지금의 이 “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이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로 계획하시고 준비해 온 결정적인 “때”(카이로스)임을 밝혀줍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에서 “가까이”(원어의 뜻: 손 안에), 곁에 혹은 예수님과 함께 ‘온’ 나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요 은총이라는 선포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는 결코 가는 나라, 곧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미’ 온 나라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완료 시제는 과거에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거나 현재 존재하는 상태를 표시합니다. 곧 ‘이전에 이미 이루어져서 지금까지 완성된 상태로 머물러 있음’ 또는 ‘완성되어 있음’, ‘가까이 왔고 지금 가까이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은 “복음”“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요, “회개”는 이를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이는 바로 지금이 “회개의 때요, 믿음의 때”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를 가져 온 예수님 자신이 곧 “복음”이요,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 이미 현존하는 나라임을 말해줍니다(루가 11,20). 결국, ‘회개’의 구체적인 모습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복음을 믿는 것’이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도록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심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마르 1,17)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버리는 일입니다. 곧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제자들은 아버지도, 삯꾼도, 배도, 그물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결국,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실현을 위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버리는 것이요,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신의 가치관과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 반면에, 새로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잘못된 것, 좋지 않는 것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이지만, 좋은 것으로 여기던 것마저도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 ‘더 값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생계수단인 배와 그물보다도, 더 값진 예수님을 발견한 까닭입니다.

그러니 “버림”은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하나의 조건이요 방법일 뿐, 결코 목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을 버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찾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리기 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따르기 위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복음’을 따르기 위해, ‘하느님 나라’를 위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

주님!

언제나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제 자신을 빠져나가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어디에 어떤 처지에 있든지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당신을 따라 당신의 나라에 들게 하소서.

오늘, 제 안에 당신의 나라를 이루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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