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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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여인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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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hsson] 쪽지 캡슐

2002-09-28 ㅣ No.39443

  마리아, 겸손의 여인

  

 

1. 어느 주교님께서 한 본당에서 강론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론의 첫마디가 심상치가 않았지요.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한 여인을 사랑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여인을 사랑해 왔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신자들 모두는 깜짝 놀라서 주교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옆사람에게 고개를 돌려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성당은 순식간에 웅성거림으로 가득찼습니다. "이게 무슨 변고인가. 우리 주교님께 여자와 아들이 있다니..." 평소에 아주 존경을 받던 주교님이었던 만큼 신자들의 충격은 그만큼 더 컸을 것입니다. 그 주교님은 신자들의 웅성거림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신 다음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나는 한 여인을 사랑합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마리아요, 그의 아들은 예수라고 합니다." 그제야 신자들은 "아하!"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렇게 독신으로 사는 성직자들까지도 공개적으로 마음놓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여인인 마리아! 우리 천주교회는 오래 전부터 그 분을 공경해왔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어떤 분일까요? 잘 안다고 여겨왔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많은 것을 얘기할 수 있지만, 그분은 우선 겸손한 여인이었습니다.

 

 2. 어느 날 이스라엘 땅 나자렛이라는 시골 마을에 사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믿기 어려운 얘기를 전합니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들을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가 1,28-32).

 

   마리아가 살던 곳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마을"(루가 1,26)이었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은 "외국인들의 지역"(이사 8,23; 마태 4,4 참조)이라 불리웠으므로 속된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실제로 그 지방이 이교도들의 지역과 근접해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해칠 위험이 컸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지역을 신통치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수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요한 1,46)라는 나타나엘의 반문은 이런 의식을 반영해줍니다. 바로 이렇게 천대받는 지역인 나자렛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하느님은 큰 은총을 내리셔서 구세주의 어머니로 삼으려고 하십니다.

 

  그러면 시쳇말로 별 볼일 없는 곳에 살던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성서에는 마리아가 무슨 뛰어난 능력이나 공덕이 있다거나 가문이 훌륭하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마리아, 히브리말로 미리암이란 이름은 그 당시에 아주 흔하던 이름이었지요. 또한 성모님은 스스로를 비천한 여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루가 1,46). 이런 점을 미루어서 마리아는 우리처럼 보통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평범한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셔서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삼으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은 평범하고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인간을 선택하여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십니다.

 

  3. 이런 점은 성모 마리아 이전과 이후에도 종종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서 야훼 하느님은 양치기에 불과 했던 어린 소년 다윗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1사무 16,1-13 참조). 예수님은 평범한 어부인 베드로를 택해서 당신의 수제자로 삼으셨습니다(루가 5,1-11). 오늘날에는 능력과 자격도 별로 없는 사람들을 택하셔서 당신 일꾼과 도구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잘나서, 능력이 있어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됐다고 우쭐해서는 안 됩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자격이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자신이 선택이 됐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이런 점은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해서 부른 <마리아의 노래>에서 잘 드러납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 올리셨도다"(루가 1,46.52).

 

  4. 하느님은 인간들 사회에서 그러하듯이 번듯하고 내세울 것이 많은 사람들을 택하시기보다는 보잘것없고 하찮은 사람을 택해서 당신 구원 사업을 펼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때때로 능력 있는 사람을 택하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대부분 ’콧대’를 한번 꺾어 놓으신 다음에야 당신 도구로 쓰시지요. 왜냐하면 하느님의 일은 자신의 재주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능력에 의존해서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모세나 바오로 사도는 한번 꺾어진 다음에 비로소 하느님의 일꾼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핍박받는 히브리인으로 태어나서 우여곡절 끝에 파라오 딸의 양아들이 되어 이집트 왕족의 교육을 받은 모세는 어느 날 궁중 밖에 나가서 자기 동족이 고생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 때 마침 이집트인 하나가 동족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분격하여 몰래 그를 쳐죽이고 묻어버렸지요.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은 금시 퍼져서 파라오가 모세의 목숨을 노리자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피신하여서 40 년 간 양치기 생활을 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비천한 처지에 놓여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을 때 하느님은 그를 부르십니다(출애 2,11-3,17). 젊은 모세가 자신의 힘으로 백성을 구하려고 나섰을 때 하느님은 오히려 그를 곤궁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인을 살해한 사건으로 인해서 미디안으로 도망가서 40년 간 양치기 생활을 하면서 겸손해졌을 때 하느님은 비로소 그를 불러 당신의 일꾼으로 쓰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처음에 율법에 충실한 열성적인 바리사이파 사람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나 자신이 쌓아온 열성적인 바리사이파로써의 삶이 송두리채 흔들린 다음에 그리스도의 일꾼이 됩니다. 하느님의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나고,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약해졌을 때 오히려 강하게 된다고 고백합니다(2고린 12,9-10 참조).

 

  5. 성모 마리아는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즉 하느님 앞에서 자신은 작고 보잘것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베푸신 은총과 권능의 위대함을 찬양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모 마리아는 모든 신앙인들의 모범이십니다. 즉 신앙인은, 자신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이런 자신을 선택하여 당신의 일꾼으로 삼아주시는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 드리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 거리에 버려져 죽어 가는 이들을 돌보는 애덕 실천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던 마더 데레사는 자신이 하느님 손에 쥐여진 "작은 몽당연필"에 불과하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자신은 작은 몽당연필처럼 보잘것없지만, 하느님은 이런 자신을 도구로 삼아 당신의 구원 사업을 펼치신다는 뜻의 말입니다. 성모님을 닮은 겸손이 엿보이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단지 거대한 애덕 사업만이 아니라 이런 겸손 때문에 마더 데레사는 종파와 계층을 초월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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