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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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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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0-11-24 ㅣ No.142378

 

요 몇년사이에 저의 일가 친척 어른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올해는 고모부님이 돌아가시고 작년에는 이모부님이 돌아가시고 그리고 집에 계신 부모님도 몸은 성한 편은 아니십니다.

 

이모님도 이모부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 충격이 지금까지도 계속되어서 몇칠전에는 중풍을 맞으시고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주변에 어르신들이 죽음을 맞이하시는 것을 보면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에 먹기 살기위해서 여기 구미에 혼자 내려와 있는데 사람일이라는 것은 어찌 모르는 것으로 갑자기 나 혼자 있을떄 고독사 하면 어찌하나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그러나 어찌 맞이하느냐 그것이 영적인 내공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한것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하십니다. 어찌 보면 섬뜩합니다.

 

어찌 살아야 하나 ? 그러나 신랑의 비유에서도 그렇고 등잔의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 여인들에 대한 비유도 그렇고 항상 준비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명확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분이 오심이 기쁨이요 행복이지만 그러나 준비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이 오심이 기쁨이 아니라 낭떨어지 같은 그런 절망적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 영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지속적으로 영유하고 그분 뜻에 맞게 살아간 사람이라면 죽음은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 될것이고 그렇지 않고 육적인 것만 쫒아온 삶이라면 땅의 길만 보고왔기에 자신의 육적인 것이 모두 끝이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문이 너무 높이 있어서 결국은 좌절과 절망으로 다가 올것입니다.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이 최상의 복입니다. 문을 잠시 열고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서 주님품에 안기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시점에 안기는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입니다. 지금 속에서 주님과 같이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죽어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오늘에 충실하고 주님안에서 행복하여야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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