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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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땅의 평화와 다른 하늘의 평화를 전구하시는 삼위의 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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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62.134.*]

2019-11-16 ㅣ No.12264

비공개 [182.216.229.*] 09:17 ㅣ No.12263

전부터 몹시 궁금했던 질문인데요 아시는 분이 없으시더구요.

성 미카엘 대천사와 사탄은 어떻게 싸우는지요? 둘 다 영이라 인간들같이 칼을 쓰거나 주먹을 쓰지는 않을테고 모르겠네요, 정말 궁금해요.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랑과영혼 [121.162.134.*]

11:34 ㅣNo.12264

 

성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굿뉴스 초기 어떤 신부님께서는 "무엇이 하느님의 일인가?"라고 하셨는데 오늘과 어제를 내포하고 있겠지요. 이에 성 라파엘(하느님의 치유), 성 가브리엘(하느님의 권세) 세 분의 대천사와 함께 가톨릭 신앙인들은 전능하시고 한 없이 자비로우시며 지고지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빽으로 그리스도 병사 레지오 크리스티로서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레지오 마리애 기도를 벗삼아 영적 투쟁을 하기도 합니다.

 

많은 영적 갈등들이 때때로 나를 못살게 굴기도 할 것입니다. 필자 경우는 온라인 상에서 노래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촉촉 보이스 젊은 여인과 착한 남자 둘이 있는 방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자연스럽게 차동엽 노르베르또 신부님이 위독하시어 노래 한 곡 부르니 여인은 잠수 하였고 잠시 후 잘 못 전해진 마이크를 받은 그녀는 "그런 노래 부르지 마세요, 나는 신내림을 받았어요. 어쩌고 저쩌고를 하였습니다" 이에 과거의 미카엘 빽이길 자처하던 필자는 언쟁을 할 수 있었겠으나 "알았어요, 조심하겠습니다"하고 분위기가 다소 냉랭하여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역시 젊은층들의 컬리튀가 좋은 노래팀 방에 들어가 '너를 위해'를 부르려는데 잠수하고 있는 그녀도 보였습니다. 

 

필자는 그녀보다 선종하신 차동엽 신부님과의 영적 대화로서 불러야 했기에 그렇게 노래했는데 필자 노래 특징은 땅의 평화와 다른 하늘의 평화도 아닌 어중간 형이기 때문에 이 곳 굿뉴스나 자게판 경우처럼 댓글이 지난 30여년 동안 총 너 댓개 정도 밖에 안됩니다. 온라인 상의 먹고 마시고 윤간 등에 여릴 수 있는 일반인들에게는 진공 청소기도 아닌 쓰나미 노래과라 할까요? 청년들은 일순간 무거운 잠수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여 구름과자를 사러 아웃한다며 두 번째 자리를 피했지요.

 

세 번째 그녀와 마주친 날은 성바오로미디어 블론티어로서 차동엽 신부님의 유한공고 시절 1년 선배로서 기차 통학을 함께하며 고 이태석 신부님의 추모영화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제작에 기여한 이태석 신부님의 수도자 선배이신 성바오로수도회 심재영 수사님과 더불어 차신부님 선종 애환이 전입가경을 이루고 있었기에 호흡이 매끄러워 노래를 더욱 깊이 감정 드러나지 않도록 다만 사랑으로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그녀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불쾌함, 선민의식 등으로 초면 꿈의 단계 지나갔고 갈등감 등의 분심을 만났겠으나 기도의 힘은 이들을 사랑으로 복기할 수 있기에 사랑은 그렇게 회심으로 진화하는 생명체로서 하트(심장)의 건강을 회복시켜 줍니다. 미카엘 천사는 그렇게 여인으로서 채워지길 갈망하는 심장 그리고 남자로서 비워지길 갈망하는 방광 등의 (채우려는)오장 육부(비우려는) 건강부터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영과 영의 싸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불행히도 그 우수한 두뇌와 뜨거운 열정 소통 수단을 눈 앞에 두고도 그것을 하느님께서 선정해 주시기에 소통 수단을 강구하지 못하고 낙태, 제왕절개, 교통사고, 이혼, 자살 등의 죽음을 맞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면 어둔 길에서 겁탈 당한 수녀님도 조용히 수도회를 나와 무죄, 무고한 아기의 생명을 구하시는데 말씀이지요. 

 

성 미카엘 대천사는 세상 모든이 안의 모든 것 사랑의 영안을 눈 뜨게 해주시고 또한 세상 모든이가 자연이신 성모님 태중의 일란성 쌍둥이인 것을 인식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싸움 또한 나부터 선교하고 전교하는 지금의 은총을 누려야 할 것으로 답을 구하지 못함도 답을 알게 해주시는 은총과 벗에게 돈(달란트)을 받을 생각 없이 다만 빌려주는 카메라 삼각대 균형 및 튼튼 은총 또한 땅이 아닌 하늘의 기쁨 평화 은총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군중의 모습이 나라는 이야기지요. 미사중 너와 나는 그렇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며 기도를 올립니다. 세속 사람들도 "새해 복(은총) 많이 받으세요"라 하고 어둠의 방에서 연인들 또한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며 사랑한다는 이야길 자주 할 것입니다. 이에 성 미카엘 대천사는 오늘도 너와 나를 성바오로미디어 브랜드인 라비따(라이프)로서 살아있는(라이브) 나의 와이프인 라이프로서 집으로 돌아가는 샘의 철학을 노래로 표현해 주기도 할 것입니다. 이에 올드팝 언체인드멜로디를 부름으로서 부르심을 만나고 함께 쉬고 함께 부른다는 것 행복한 일이겠지요. 

 

한 남자가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자 매일 죽고 태어나기 때문으로 성 미카엘 대천사는 또한 조율의 은총을 성 라파엘, 성 가브리엘 대천사와 더불어 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에게 주심일까요. 바로 당신이신 천주 성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생활 속의 준성사로서 고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지상의 선은 종료 되고 하늘의 선종하신 임들과 또한 신중의 신, 왕중의 왕이신 도미누스 데우스 하느님과 하나되는 기도로서 들숨 또한 날숨과 즐겨 리듬을 맞춰 길이라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도 합니다. 

 

더불어 영과 영 싸움에 몰두하면 자칫 필자처럼 영지주의 시행착오 등으로 장기 별거자가 될 수 있기에 또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서울 남자로서 경상도 처녀였던 아내를 만난지 이틀만에 노래로 결혼까지 꼬셨고 녹번성당 성전 봉헌 미사(정진석 니꼴라오 추기경님 집전) 모든 성인 호칭 기도 성가 선창으로 아내를 두 번째 영적으로 꼬셨으나 세 번째 꼬시는건 그동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와아! 아내 꼬시는것이 진정 어려운 것이구나!"를 반성으로 거듭해야 했고 그래서 남자들이 나이 들면 "큰 냉장고를 사야 하는구나!" 등도 연계 했지요. 이사 갈 때 비밀리에 이삿짐 속 냉장고에 숨어 남편을 버리고 가지 않도록 수비 전술을 강구하는 것이지요. 

 

이 때 비밀 노출되면 냉장고를 통째로 버리고 가기 때문에 부부간에도 침묵의 슬기 또한 필요하다는 것으로 삼위의 대천사 뻭으로 굳게 믿기도 해야 할텐데 그것이 말처럼 쉽던가요? 신앙 어려운 것이고 어려움이 가치를 더하기 때문인데 남자는 다만 참여하는 사랑주의기에 그 내조를 잘 받은 류현진을 보더라도 답이 쉽게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새가슴 벤투 감독을 보면 약오르지요? 한국 축구 장점에 선진 축구를 접목해야 할텐데 마치 시대의 아내와 남편 별거(교회법은 이혼이라 하고 재혼은 중혼(重婚)이라 함)와도 같지요. 이에 청년들이 감성 농축 언어인 육두문자를 남용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하튼 영지주의와 속지주의 즉 머리와 가슴 소통의 기관사는 예수님이 되어야 할 것이고 이미 모든이가 그렇게 하시고 있다고 보여진다면 그는 틀림 없이 삼위의 대천사 후원을 믿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삼위의 대천사와 자유자재로 천상까지 오를수 있는 레일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고 듣고 믿는 쌍둥이 토마스의 신앙과 믿고 듣고 보는 사람은 과연 누군지 그것을 밤이면 조율하게 해주는 별, 그리운 님, 천주 성부 등 삼위일체 놀이로 글그림노래 하나임을 조금씩 즐겨간다는 것 그 또한 인생 기차 여행일 것인데 영과 영 싸움은 천주교 즉 하느님 가르침을 믿는 너와 나의 사랑과 자비 결합 과정으로 지금은 지나가는 것(영광의 신비 2단을 묵상해보세요)으로 인식해도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요즘 필자는 방금전 기억들 사라져 그것을 애착으로 되 살리려는 호기심 충족 등이 아닌 욕심 많던 영적 찌꺼기형으로서의 제 2의 천성 습관에 대한 보속인지 그저 나 편코자 하는 것인지 굳이 그것을 되살리려 하지 않고 다음의 내가 아닌 그 분과의 글그림노래 놀이를 만나고 있는데 질문자 덕에 "이 또한 하느님께 의탁하지 못하고 있었구나"를 성찰하게 됩니다. 

 

아무튼 신앙은 자칫 인간적 호기심으로 머물 수 있기에 역시 하느님께서 즐겨 기도하고 영원 앞의 어린이 천국 또한 현세에서 보여주시지 않겠나 합니다. 기도, 공부, 봉사, 성사, 공동체 생활 역시 진화시켜 주신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필자 경우는 세 번째 아내를 꼬시는 것 30분이면 족하겠다는 자심감을 삼위 대천사께서 전해 주셨다는 생각으로 가족 단톡방만 만들어도 꽃과인 여심을 늑대(아돌프=아담)로서 사랑 조종 아닌 꼬시기 전략으로서 가능하겠으나 그것들 하느님께 의탁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임이신 예수님 빨랑까에 감사 드리면서 오늘은 성 마키엘 은사 더불어 내부 작전 여정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내 마음 모르는


                 심 재 영 



사랑을 모릅니다

당신 안의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내 마음 모르는 당신은

하루의 꽃들이

어디에서 열리고

저문 저녁 어디에서

잠드는지


아, 마음 모르는

당신을 보면서

내 몸이 기쁨으로

채워지는 것은


어쩌면

저 꽃이 저절로

피고 지듯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비밀입니다


내 마음 모르는

당신은

아직도 그 순정을

모른체 눈 감고 있지만

제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의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거저 주는 사랑이 되게 합시다. 


인간적인 사랑에는 언제나 이기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사리사욕이 사랑에 동기를 부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거저 주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먼저 사랑합니다. 우리 안에 초자연적인 사랑의 불이 타 오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끼아라 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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