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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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124.194.116.*]

2013-12-06 ㅣ No.10416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체 신부의 기준이 뭐냐고, 막말이 나오셨지만, 

저는 일단 님이 예수님을 생각하며 잘 참아내신 것, 잘 버티신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저는 주임신부님께서 대놓고 저를 거부하실때에, 그리고 제가 사는 동네주민들 사이에서 왕따시키실 때에,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냉담 좀 했지요.


지나고 보면 저는 제 신앙이 성숙하지 못했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었는데, 그냥 마지막 방법을 써 버렸으니까요.

님께서는 그 마지막 방법까지 가기 전에 계속 버텼지요.

그리고 이제는 님 자신을 위해서 선택해야 하는 다른 길 앞에 서 있습니다.

가시고자 하시는 그 길을 되도록 편안한 마음으로 잘 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제든 수도자든 평신도든 자신들의 신앙생활의 시작점에서 완성되어 버리는게 아닙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지만, 정말 성숙한 그리스도인, 완성된, 완덕에 이르는 ... 이런 말을 쓰려면

한참 더 가야 하지요.

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품을 받고 새 사제 딱지를 벗어도 은경축을 맞이해도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기 자신의 바램과 열망으로 사제가 되지만,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아직 미성숙 상태인 사제나 수도자가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서른 이전에 신학교를 입학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거치지 않고 사제가 되어서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도 언젠가는 세상도 알고 사람에 대해서도

알게 되겠지요. 그것은 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완성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게 됩니다.

때로 그 수 많은 시간들 안에서 어떤 사제들은 수없이 많은 신자들을 울리고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그런 과정이 왜 있는 걸까요?


저는 그것이 그렇기 때문에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산에 올라서 최정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만끽할 수 있는 그 느낌을 얻기 위해서

어떤 때에는 하늘도 보이지 않는 깊은 산중을 헤매야 하기도 하고 

가파른 낭떠러지를 가야 하기도 합니다.

그런 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산봉우리로 오르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 길이 있고서야 최정상에 오르는 것이 의미가 있지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 안에서 마찰을 겪고 때로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들을 단순한 아픔이나 시련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적어도 인생에 대한, 신앙에 대한 배움으로 여길 수 있다면

그런 아픈 기억도 미래를 위한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 한 사람을 알고 있구요.

저와 같은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그 분은 사제가 되어

그 사제를 본보기로 삼아서, 

자신에게 아픔을 준 경우들을 생각하면서 다른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고

보란듯이 살겠다고 이야기를 하더이다.


님께서도 지금의 과정을 잘 넘어서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입장이 인생에서의 패배도 아니고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린 경우도 아닙니다.

단지 뭔가에 걸려 넘어질 뻔 한 것 뿐입니다.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한 그것에 얽매여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아프더라도 피곤하더라도 앞을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덧붙여서 사제는 서품으로 완성되는게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의 본격적인 시작이 결혼식인 것처럼, 서품도 시작일 뿐입니다. 

결혼하는 부부들과 다른 것은 사제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기도입니다.

그 분을 욕하고 싶고 어떻게 하고 싶을 때에라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님께서 기도해주신 신부님을 언젠가 다시 만날 때에는 

분명히 지금과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님의 기도가 부족한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미 하느님의 사제이니, 하느님께 맡기고 용서할 수 있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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