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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이준성 신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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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성 [dooly] 쪽지 캡슐

2002-10-19 ㅣ No.41041

안녕하십니까? 명동성당의 이준성 신부입니다.

아래의 게시물 41023번 이준욱님의 글의 주인공 되는 사람입니다.

원래 이런 곳에 글을 올리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지만 이준욱님께서 사건의 개요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10월 16일의 사건의 개요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간의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명동성당은 2000년 한국통신 노조의 성당 점거 사태 이후로 끊임없이 장기 천막 농성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밝혀왔었습니다. 성당에서 기도하고자 하는 분들과 성당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너무나 큰 피해를 주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단체들이 성당과의 상의 없이 무단으로 성당을 점거하여 왔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을 때 성당을 찾으시는 분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성당을 무단 점거한 분들과 대화하는 것이 명동성당에서의 저의 직무입니다.

 

CMC 노조 역시 그동안 성당을 무단 점거한 다른 단체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한국 통신 노조 이후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장애인 통로에 가로막고 수많은 프랭카드를 걸어 놓아 노약자와 장애인들이 잡고 올라와야할 난간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중앙 계단 또한 농성텐트를 설치하여 사람들의 통행을 가로 막았습니다. 게다가 남은 유일한 통로인 차도 또한 10여대의 농성자 차량으로 인하여 남은 좁은 공간으로 차와 보행인이 뒤엉키는 위태로운 상황까지 야기하였습니다.

 

이에 저는 장애인 통로 확보와 무단 주차 근절해 줄 것을 노조에 요구했고 심지어는 사정까지 하였습니다. 다행히 장애인용 통로는 비우고 프랭카드는 난간 위로 올리는 것으로 장애인 통로는 확보되었으나 무단 주차 문제는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마침 노조 쪽에서 단식 농성을 이유로 야간 화장실 개방을 요청해 왔었습니다. 명동성당은 여러 가지 이유로 화장실의 야간 개방은 불허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단식자가 장 청소 약을 먹어야 하고, 그로 인하여 4시간마다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하였기에 특별히 배려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동시에 원칙을 포기해서라도 신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올바른 일이다라는 생각에 이 기회에 신자들의 통행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무단 주차 근절을 요구하였습니다. 물론 그 요구는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와 한번의 충돌이 있은 후 간신히 이행되었습니다.

 

(참고로 이때 제가 술을 한 잔하고 들어올 때였습니다. 저는 성당 밖을 잘 나가지 않습니다. 거의 성당과 그 부속 건물들 사이만 왔다 갔다 합니다. 사실 성당을 무단 점거한 이들을 보면 마음이 상해서 잘 보려고 하지 않기에 그런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성당 밖을 나가기도 하는 데 거의 모두가 신자 분들과 식사 약속이 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다 보면 술을 한잔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식사 후에 들어오다가 노조의 잘못된 경우를 보면 분명히 요구할 것은 요구합니다. 그러면 노조 쪽에서는 ‘술주정한다’고 하다군요. 그때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많은 차들이 무단 주차되어 있기에 시정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노조 쪽에서는 대부분 성당 신자들 차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차 안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해 보았더니 단 1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노조 차량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노조 쪽에서는 노력했다고만 할 뿐 무단주차에 대한 사과는 없었습니다.)

 

이 건이 ‘Oh My News’ 기사에는 ‘화장실 닫고’로 나갔더군요. 하여간 그 후로 한동안은 주차 문제가 어느 정도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은 야간에도 개방되었구요. 그런데 어느 날 노조 쪽에서 텐트를 추가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성당 안내의 집 바로 앞에 말입니다. 그곳은 성당 안에 드나드는 차량을 통제하는 곳으로서 그곳에 텐트가 들어서면 오르내리는 차들이 지나치는 것과 신자들의 통행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였습니다. 이미 성당과 주교관 마당에 10개의 텐트(대형 텐트 9개, 등산용 1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설치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안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물리력으로 막을 힘이 없었기에 만일 텐트를 설치한다면 그동안 노조 쪽에 대해서 배려했던 부분(예를 들면 화장실 야간 개방)을 철회할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사실 화장실을 닫고자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은 노조 쪽에서 너무나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이야기하면 텐트 설치를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텐트를 설치하였습니다. 게다가 성당에 대한 항의 표시였던지 사람은 없고 자동차만 주차되어 있는 ‘주차용 텐트’까지 설치하였습니다. 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제가 말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하여 그 동안의 배려, 즉 화장실 야간 개방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러자 노조 쪽은 다음 날 집회에서 어떤 연사가 ‘화장실을 닫는 조건으로 텐트 설치를 허락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후 이동식 간이 화장실 2동을 반입하였습니다. 성당 들머리 쪽 텐트 옆으로 말입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자기들도 텐트 옆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 싫었던지, 아니면 성당 쪽을 자극하기 위해서인지 성당 마당으로 간이화장실을 끌고 올라왔습니다. 거기다가 그 다음날은 간이화장실 문에 ‘성당 측의 비인도적인 조치로 설치했습니다’라는 요지의 긴 글까지 붙였습니다. 그간의 과정은 모두 생략한 채 말입니다. 아침 미사를 끝내고 그것을 본 저는 왜곡된 그 게시물을 제거하였습니다. 하지만 간단한 항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날 계획된, 1년에 단 두 번 밖에 없는 본당 직원 야유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노조 식으로 표현한다면 노사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술 좋아하는 직원들과 술도 한잔 했지요)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성당으로 돌아와 보니 또 왜곡된 게시물이 붙어있었습니다. 아침에도 제거했었기에 다시 그것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노조원들이 몰려와서 ‘니가 몬데…’ 시작되는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였습니다.(그 때의 상황은 41008번 게시물을 참조하세요) 그래서 저도 조금은 흥분된 마음이 들었으나, 결국 다수의 다툼은 서로를 격앙시킬 뿐이기에 대표자가 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다수의 노조원들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악한 말과 행동뿐이었습니다. 그때 ‘신부가 술주정한다’는 말도 나오더군요. 술을 마시지 않은 오전에 똑같은 행동을 했을 때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더니….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해 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기에 대화를 포기하고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돌아와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오갔던 말들과 행동들, 특별히 제가 했던 말과 행동을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마음은 많이 상했지만 충돌의 대상자 중에 저와 계속적으로 면담했던 이도 있었던 것이 특별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결국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 2시쯤 그 사람에게 전화해서 제가 조금 흥분했던 부분은 사과했습니다.(이것이 이준욱님이 ‘사과했다’고 표현한 것의 내용입니다. 사실 이 전화는 그동안 저와 면담했던 노조 대표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남기기 싫어서 한 전화였습니다. 서로 충돌은 있었지만 결국 앞으로도 대화해야 할 사람이기에. 어쩌면 대화 당사자로서 서로간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개인적인 성격의 전화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화 내용이 제가 마치도 간이 화장실의 게시물을 제거한 것을 사과한 것으로 왜곡돼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마음이 아픔니다.) 하지만 화장실은 치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까지가 10월 16일에 있었던 일의 개요입니다.

 

-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

그동안 노조를 만나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노조가 이야기하는 ‘대화’나 ‘협상’이라는 말의 의미가 굉장히 어려움을 느낍니다. 협상이란 결국 서로가 무엇인가 희생하는 것을 포함하는 데 그동안의 협상을 통해서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일방적으로 자신들은 약자이니 성당은 인내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대화이고 협상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개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 내용까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노조와 대화하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조 쪽에서 대화를 요청하면 겁부터 납니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신자들에게 피해를 주겠다고 말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래왔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요청하면 또다시 만날 것입니다. 명동성당에서 ‘대화 회피’를 했다는 말을 들으면 안될 테니까.

 

하여간 하루빨리 이 사태가 끝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당을 찾는 신자 분들이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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