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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보 4쪽의 사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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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1-11-11 ㅣ No.26250

 

오늘 서울주보 4면에 있는 사목란에 [사형제도여 안녕] 이라는 제목의 이영우 토마스 신부님의 글과함께 실려있는 사진입니다.

 

지금 악수를 하고 있는 두사람은 여러분이 너무도 잘아시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한 사형수의 모습입니다.

 

어렸을적 저와함께 주일학교도 같이 지냈으며 더욱이 학교도 제 후배인 녀석입니다.

 

오늘 오전미사를 다녀온 동생이 주보를 제게 건네며 이 사진을 보여주더군요.

 

전 잠시 어안이 벙벙하며 마음이 무척이나 아파옴을 느꼈습니다.

 

녀석과는 같은 본당에서 자란 아주 잘아는 녀석이지요.

 

여러분은 녀석을 잘 모르시겠지만 아마 6~7년전쯤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다시피한 경찰관이 이웃집 여인을 살해한 사건을 기억하시는분은 아마 알지도 모르겠군요.

 

그때 그 경찰관이 지금 저렇게 죄수복을 입고 사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전 전 동네 목욕탕에서 녀석을 우연히 만나 서로 등도 밀어주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더랬지요.

 

어저께 야근을 해서 무척 피곤하다며 경찰관으로 사는것이 힘들다는 넋두리와 곧 있으면 자신의 아이가 태어날것이라며 내게 뻐기듯이 자랑하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내가 혹시 이다음에 도둑놈이 되면 나좀 봐주라는 농담을 건네며 우린 그 목욕탕에서 헤어졌었지요.

 

그 모습이 이승에서 본 마지막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후 며칠뒤 광화문 한복판에서 뉴스 전광판에 경찰관이 살인범이었다는 기사와 함께 녀석의 사진이 크게 실려나왔었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혀를 끌끌차며 말세야! 말세!라는 말 한마디를 툭! 던지며 지나갔었습니다만 전 멍하니 그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 납니다.

 

미사를 한번도 거르지 않고 신앙생활도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며 어렸을적엔 자기 동생과 함께 복사도 열심히 했던 착한 녀석이었건만...

 

시력이 나빠서 두꺼운 돋보기 뿔테 안경을 끼고 다녔고 유난히 코가 커서 우리가 코주부라고 놀려댔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 사진을 보니 그 뿔테 안경은 여전히 착용하고 있군요.

 

그간 세월에 묻혀 녀석의 소식은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오늘 이렇게 주보에 실려있는 사진을 보고 설마했는데 결국 사형수로 지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녀석은 제가 알기론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진 않았습니다.

 

신혼살림도 경찰관의 박봉에 어울리게 달동네에서 살았던것으로 압니다.

 

더큰 살인자와 더큰 도둑놈들도 힘과 권력을 빌려 큰소리 떵떵! 치며 살고있건만 가난한 달동네에서 지내던 녀석이 살인이라는 큰 죄를 지어 저런 모습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비쳐짐이 마음이 무척이나 아파옵니다.

 

제가 아는 녀석이라 봐주십쇼! 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죄를 지었으면 달게 받아야지요.

 

하지만 저녀석을 죽여서 나아질것이 무엇입니까?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함을 조심스럽게 입을 떼어봅니다.

 

물론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몰라 지껄이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죽여서 나아질것이 있다면 응당 죽여야하겠지요.

 

하지만 얼마전 우리의 기억속에 여의도에서 택시를 몰고 광장을 덮쳐 어린생명을 앗아갔던 한 택시 운전사와 그 아이의 할머니의 용서와 사랑을 접하고 많은 국민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야 감동으로 끝났지만 그 할머니의 용서와 사랑이 있기까지 감히 우리가 상상도 할수없는 고통과 크신 사랑이 있었을겁니다.

 

감히 저같은 허접들은 흉내조차도 내지 못할 그 큰 사랑에 우리 모두는 감동을 받았고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한순간 욱! 하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그는 살인이라는 어마어마한 큰 죄인이 되어있지만 오늘 사진을 보니 추기경님은 그 더러운 살인자의 손을 잡아주고 계십니다.

 

그 살인자는 고개를 숙여 추기경님을 알현하고 있습니다.

 

그를 무조건 용서해주자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응당 죄과를 치루게 하되,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우리가 함부로 앗아가진 말자는 얘기이지요.

 

우리 가톨릭인들만이라도 사회에 일그러진 모습들을 바로 보아야하지 않을까요?

 

이 사회는 주님이 주관하고 계신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벗이고요.

 

오늘 동생의 입을통해 그 녀석의 친구라는 놈이 면회를 다녀와서 한말이 녀석은 그안에서 우리보다 더 착한 의인이 되어 있더라. 라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의인이 되어있던, 의인인척 하던, 우리는 그의 죄를 미워해야지 그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어야야할 아무런 권리를 누리고 있지 않습니다.

 

한때는, 아니 지금도 그는 우리와 같은 신앙안에 있는 한형제입니다.

 

지금 마음 한구석이 무척이나 무겁고 어둡습니다.

 

어렸을적 축구공을 들고 같이 축구도 했고 저에게 혼도 나보고 또 저를 보면 형이랍시고 무척 따랐던 그 말없고 착한 녀석을 오늘 저 사진을 통해 보게 되니 가슴이 무척이나 답답해옵니다.

 

그간 전 사형제도의 존,폐지를 놓고 어느 한쪽에 기울여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존속되어야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폐지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더 주님의 뜻에 가까운것 같다는 생각이 오늘 새삼듭니다.

 

저나 여러분도 어느 누구도 죄악이란 이름 앞에선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오늘 녀석이 목욕탕에서 곧 태어날 자신의 아기를 자랑했던 모습이 자꾸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오늘 미사중에 녀석을 기억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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