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자유게시판

어린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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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communion] 쪽지 캡슐

2002-05-23 ㅣ No.33833

시궁쥐 곳간에 들락거리듯..

날이면 날마다 자유게시판에 출근부 도장을 찍는 communion 입니다..

이거야 원.. 제가 백수임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 같아 조금은 면구스럽군요.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는 ’어린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어린이 미사에 가야한다’ 는 원칙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지라..

저와 제 동생은 일요일 아침이 되면 그 좋아하는 만화도 못 보고 등 떠밀려 어린이 미사에 가야만 했죠.

 

당시 제게는 미사 참례가 참으로 힘에 부치는 일이었습니다.

친구들 말 들어보면 일요일에는 늦잠도 자고. 신통하게 일찍 일어나기라도 하면 TV 앞에 붙어 앉아 만화도 본다는데..

전 동생놈 손을 꼭 잡고 성당에 가야만 했거든요.

 

아~~ 미사 시간은 왜 그리 길고 지루한지..

옆에 앉은 친구와 장난이라도 치면 대번에 마귀같은 주일학교 선생님이 달려와 야단을 치고..

조금이라도 떠들면 호랑이 같은 신부님의 호령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그래서 전 뱀 만난 개구리 마냥 몸 한번 못 움직이고...

미사 시간 내내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지곤 했습니다.

우씨.. 어른들은 자기들 편한 11시 미사 가면서 왜 우리보고는 아침 일찍 미사를 드리래..

끄응.. 일요일에 성당만 안 온다면 난 얼마나 행복한 어린이일까..

신부님은 아프지도 않나.. 한 달 정도만 미사 없었으면 진짜 좋겠다..

하지만 안타깝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놈의(?) 주일 미사는 쉬지도 않았습니다.

당시로선 일요일 어린이 미사가 제 인생을 암울하게 만드는 불행이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짝!! 전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성당에 가는 저와 제 동생에게 100원이란 거금을 각각 쥐어주셨는데.. (생각해보십시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입니다..)

이 돈을 가지고 일요일 오전을 풍요롭게 보낼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 때.. 제 나이 아홉 살이었습니다.

 

일단 전 집을 나서자마자 동생을 앞에 세워놓고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 너.. 누나를 믿지?

당시 다섯 살이었던 제 동생에게 전 하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던지 동생은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더군요.

- 으응..

- 그래.. 누나만 믿고 따라와.

 

전 앞장서서 동생을 이끌고 동네 공터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는 리어카에 목마를 매단 놀이기구가 있었거든요.

그야말로 온 동네 어린이들에게 그 목마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놀이동산 놀이기구보다 더 황송한 놀이기구였죠.

기억나십니까? 앞뒤로 두개씩 스프링을 매달아 몸의 반동을 이용해 즐기던 놀이기구..

 

전 그곳으로 동생을 데리고 가서 둘이 함께 신나게 말을 탔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인근 놀이터로 동생을 데리고 가서 그네며, 시이소오며..

누나로서 해줄 수 있는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해 주었죠.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행했던 뽀빠이 과자, 깐돌이 아이스께끼..

이런 간식거리까지 동생에게 물려줬습니다.

 

짜아식.. 좋아하기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헤벌쭉거리는 동생을 쳐다보며 저 또한 흐뭇했죠.

- 거봐.. 누나 말 듣기를 잘했지?

- 응.

- 앞으로도 누나가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 응. 알았어, 누나.

 

그러다 보니 미사 한 시간.. 교리 한 시간..

저희에게 허락됐던 일요일 오전이 후딱 가더군요.

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운하다는 눈망울로 동생이 저를 쳐다보더군요.

- 누나.. 이제 우리 집에 가는 거야?

- 기다려 봐..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하나 남았어.

그리고 동생을 끌고 교리 마치기 몇 분전에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전 모든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교리에 들어간 틈을 이용해서 성당으로 살금살금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주보를 두 장 훔쳤죠.

자고로 완전범죄에는 알리바이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 어린이 주보만 어머니께 제출하면 오늘의 범죄는 끝!!

저의 주일미사 땡땡이는 그야말로 완벽해지는 겁니다.

아~~~~~! 참으로 저는 교활한 어린이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저희 어머니가 얼굴이 벌겋게 돼서 씩씩거리며 들어오시더군요.

그러더니 다짜고짜 이놈의 기집애! 하시면서 무조건 패시는 겁니다.

뜨개질 바늘이었더라... 파리채였더라...?

하여튼 전 죽기 직전까지 얻어 터졌습니다.

미사 땡땡이를 결국 들켰던 것이죠.

거짓말 해, 돈까지 삥땅쳐, 그것도 동생까지 꼬드겨..

몇 가지인지 셀 수도 없는 죄목으로.. 살면서 그렇게 심하게 맞아본 적이 두번 다시 없을 정도로 쥐어터졌습니다.

 

알고 보니..

오며가며 만난 주일학교 선생님이 저희 어머니께 그 사실을 다 일러바쳤던 겁니다.

그럴 줄 알았어.. 그 마귀 할멈.. 저주받아라..

전 제 방에 틀어박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다짐했습니다.

하도 울어서 딸꾹질이 나오더군요.

(딸꾹!) 정말 (딸꾹!) 나중에 (딸꾹!) 자식을 낳으면 (딸꾹!) 절대로 (딸꾹!) 성당 (딸꾹!) (딸꾹!) 안 보낼 (딸꾹!) 거야!! (딸꾹!) (딸꾹!)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전 제가 그토록 증오하던(?) 주일학교 교사가 됐습니다.

머리가 허리까지 오는 터라..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저를..

’흑발마녀’ 혹은 ’메두사’라고 불렀습니다.

저라고 별 수 있었겠습니까..

저도 아이들이 미사 시간에 장난치고 떠들면 다가가서 눈을 부라리며 협박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로 불러다 놓고 야단도 쳤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일을 거울로 삼아..

교리 미사 땡땡이 친 녀석들이 있더라도 부모님께 이르진 않았습니다

그저.. 당사자인 녀석을 족쳤죠. (물론 엄마한테 이른다는 협박과 더불어서요.)

세월이 흘러도 수법은 여전한지라..

녀석들이 가는 곳이 오락실, 게임방으로 바뀌었을 뿐.. 별반 저와 달라진 것은 없더군요.

 

물론 자식이 생기면 성당에 절대로 보내지 않으리라는 다짐도 깨진지 오랩니다.

아마 나중에 저도 저희 어머니처럼.. 이 놈의 기집애! 성당 안 갈래? 빨리 못 가?

이렇게 소리 지르며 닭장 안으로 병아리 몰 듯 아이들을 다그칠지도 모르죠.

하긴..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데..

가끔은 저처럼 교활한 자식 얻을까 겁도 납니다.

 

..................

 

전 성인이 돼서 세례를 받은 분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자기 스스로 신앙을 선택해 세례의 기쁨과 감격을 체험하시는 분들이 말이죠.

어떤 세례명을 택할까.. 책을 뒤적이며 고심도 하시고..

세례식 도중에 눈물을 흘리시며 기뻐하시고..

세례 때의 맹세와 다짐을 기억하시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끔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전.. 그 날 뭘 입었는지 기억도 못 하고.. 변변한 사진 한 장 없거든요.

세례식이 어땠는지 당최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당연하죠. 워낙 어렸을 때니까요.

첫영성체도 워낙 성당에 다니는 것을 지겨워했던 터라..

어머니가 본당 수녀님께 간곡히 부탁드려서 겨우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의 첫발을 내디딜 때의 감회가 별로 없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투덜거리기도 하죠.

왜 이렇게 내 본명은 촌스러운 거야.. 엄마 멋대로 본명을 지어설라무니..

내 세례 대모님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자식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하지만..

가끔은 저희 어머니께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게 있어 신앙은 마음의 고향과 같아서..

마치 귀소성 물고기인 은어처럼..

몸과 마음이 다른 곳에 머물다가도..

떄가 되면 자신이 살던 곳으로 회유하여 돌아오는...

그런 제 모습을 종종 느끼곤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떡잎은 누렇고 시들했지만.

그래도 세월을 보내면서 그런대로 어줍잖게나마 자라는..

그런 나무도 있음을..

그것이 저희 어머니의 정성과 기도 때문이었음을..

전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봐주시는 그 분을..

그리고 함께 그 분을 부르며 신앙의 이름으로 모인 여러분을..

전 진정 사랑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계시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흐미~~~ 닭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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