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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의 공권력투입이 부당하기만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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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daram77] 쪽지 캡슐

2002-11-08 ㅣ No.43161

강남 성모병원 내 성당에의 공권력 투입과 추기경님의 발언 이후로, 가톨릭이 종교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천주교인이 아닌 분들이 여기에 대해 의아해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심한 신자라고 자칭하는 분들이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자신들의 모 교회를 비방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성전 안에 계신 하느님은 모독당하거나 말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만 하느님을 모시는 ’건물’인 성전 자체만이 거룩하게 여겨지는 것입니까?

 

여러분께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강남 성모병원 내 성당의 공권력 투입에 대한 말씀입니다. 원목 신부님들의 말씀을 듣자면, 공권력 투입 며칠 전부터 이미 그 성당에서는 미사가 드려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아니, 미사를 드릴 수 없었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네요. 노조원들께서 성당 앞에 진을 치고 앉아 계시는데,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성당에 들어갈 신자분들도 계시지 않을 뿐더러, 신부님들이 미사를 시작하시기만 하면 노조원들께서는 온갖 야유와 연호, 그리고 소음으로 고의적으로 미사를 방해하셨다고 하더군요. 미사 성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가장 긴밀한 결합과 유대의 순간입니다. 그 시간을 방해하는 그 분들에게 하느님은 모독의 대상일 따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이 투입되자 그분들은 성당 안으로 뛰쳐들어가 십자가를 붙들고 계셨던 모양이군요. 이와 비슷한 예가 사무엘 하권에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의 왕정을 대신하는 사람이었으며, 따라서 하느님의 영을 받은 예언자가 기름을 부음으로써 비로소 왕으로 인정받았지요. 하지만 다윗의 큰 아들 르호보암과 다윗의 심복이었던 요압 장군은 하느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고 르호보암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큰 잔치를 벌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왕직을 대신하는 왕권을 모독함으로써 하느님을 모독한 셈이지요. 이 때 예언자 사무엘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려 그는 솔로몬을 왕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이 반역의 무리들을 제거하지요. 이 과정에서 요압 장군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감히 제단으로 뛰쳐 올라가 제단의 뿔을 잡고 버팁니다. 솔로몬의 판결은 어떠했겠습니까? 간단명료하게, 그는 ’제단에서 죽고 싶어하니 제단에서 칼을 맞게 하라’고 명령하지요.. 이 판결에 대해, 여러분은 ’솔로몬이 망령이 들었구나’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노조원 여러분이 십자가를 붙들고 있었던 것은, 결코 그들이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 안에 숨고 싶어하는 어린양이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이전의 그들의 행태와 성직자, 수도자들에 대한 그들의 근거없는 원색적인 비방을 보면 그러합니다. 이는 아마도 민주노총의 교묘한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톨릭 교회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킴은 물론 교회 내에서도 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자신들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진리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교회를 구성하는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편이 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사회에 유포된 오해와 스캔달에 대해 억울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 이러한 세속의 술수에 말려 분열이 일어난다면, 이는 얼마나 가슴아픈 일입니까? 천주교인이면서도 지금 천주교를 비방하고 계시는 분들은, 하느님을 계획적으로 모독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성전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신앙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십니까?

 

조금 길어졌지만,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이라면, 다음의 글도 읽어 주시지요. 이번 이야기는 명동 성당 공권력 투입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명동 성당은 언제나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우리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였기 때문에, 농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구요? 병원 노조는 명동성당을 ’점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성전은 미사 성제가 거행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노조의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농성으로 인하여 신자들이 성당에 나아가 미사를 드리기를 극단적으로 꺼려하게 된다면, 그래서 하느님의 성전으로서의 본래의 기능을 상실할 위험에 놓이게 된다면, 그래도 이 농성은 사랑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나요? 더 중요한 문제는, 명동 성당은 결코 한 단체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성전은 정말로 의지할 곳 없고 힘없는 이들이 찾아와 안식을 찾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 명동성당은 온통 병원 노조의 위세에 눌려, 가난하고 소외된 어느 누구도 찾아올 수 없고 신자들마저도 자유롭게 찾아올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리고 말지 않았습니까?

 

성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전에 계시면서 그 성전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하느님이 중요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으로서의 신비체인 교회가 중요합니다.

 

천주교인이 자신의 모교회를 비판할 때에, 건설적인 비판정신이 사라져서는 안 되겠지만, 이는 적어도 신앙의 감각에 의거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근거없는 흑색선전과 이미 민주노총에 의해 장악된 언론의 ’플레이’에 놀아나며, 세속의 자녀들과 함께 어머니이신 교회를 비방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러한 분들께는 하루 30분의 묵상을 감히 권고해드리고 싶습니다.

 

길다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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