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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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래를 부르는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묵시14,1-3.4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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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11-23 ㅣ No.142370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2020년 11월 23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도시는 사람들이 높이 세운 건물 때문에 아침에 떠오르는 빛과 저녁에 지는 노을빛의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다그 빛의 의미를 못 보고 깨닫지 못하게하는 세상이다.

 

(묵시14,1-3.4-5)

요한이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어린양 예수님의 12사도와 하느님 아버지의 12지파 1212=144 그리고 하늘의 충만의 숫자1,000는 144,000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루어지는 그 완전한 자비와 사랑을 입은 구원 받은 사람들을 뜻하는 숫자이다.


그리고 큰 물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하느님의 크시고 위대한 빛의 말씀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하느님께 감사의 기쁜 노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새 노래는 땅의 오래가 아니라는 뜻이다그 땅에서 해방된 이들만 부를 수 있는 하늘의 노래인 것이다.

감사해서기뻐서행복해서 나오는 것이 노래다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노래라는 것이다사람의 욕망과 시기와 미움그 죄악 때문이다그 모든 죄악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속량으로 다 씻기어 새 생명을 얻어 기뻐하는그 성도만이 부를 수 있는 새 노래라는 것이다.


(시편40, 3-4)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오물 진창에서 들어 올리셨네반석 위에 내 발을 세우시고 내 발걸음을 든든하게 하셨네. 4 내 입에 새로운 노래를우리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담아 주셨네많은 이들은 보고 두려워하며 주님을 신뢰하여라.

그 죽음의 존재가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속량으로그분 위에 세워져 하늘의 존재가 되어 감사와 기쁨의 새 노래를 부를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4ㄱ 그들은 동정을 지킨 사람들로서 *여자와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습니다.

여자와 더불어곧 세상의 가르침을 진리로 사는 음녀(묵시17,2~), 그리고 그 세상을 받아들인 교회와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타락한 예루살렘(타락한 교회)그리고 시온을 여자라 하시는 이유다.(예레30,17)

(12,1~6의 여자 또한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그리고 승천 후 사탄의 핍박을 피해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할 교회인 것이다.)


4ㄴ 또한 깨끗함을 지킨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 되었습니다. 5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말가르침을 믿고 따랐던 구원의 헛된그 거짓된 것이 없다는 것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 졌음을 지켰다는 것이다그러니 흙사람들의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는 그 자기부인버림으로 사람들의 말욕망과 헛된 희망을 주는 그 거짓 수렁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마태6,23) 2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오늘복음에서 자신을 깨닫고 보고 버리라 하신다.

(루카21,1-4)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궁핍한 과부가 생활비를 다 넣었다고 좋아하실 주님이실까의 부모도 가난한 자식이 생활비를 다 털어 용돈을 준다면 마음이 아파받을 부모 없다그렇듯 가난한 당신의 자녀가 생활비를 헌금으로 다 넣었다고 칭찬하시는 주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 1절을 다시보면,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 이 부분에서 눈을 들어’~를 빼고 예수님께서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로 하셔도 어색하지 않다.

요점은 헌금을 하는 사람의 눈이 아닌주님의 눈으로 하느님의 관점으로 보셨다는 것이다. 헌금은 내 죄를 대속하시고 죽으셔서 나를 살리신 그 예수님의 죽음그 사랑이 감사해서 내 목숨과 같은 돈을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죄의 나(목숨)는 죽었습니다버립니다라는 신앙 고백인 것이다.

과부의 생활비곧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린 것을 칭찬하신 것이다.  부지들은자신의 목숨돈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곧 감사의 헌금이 아닌 자신들의 의로움을 위한 예물로 드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십자가로 죄의 용서의로움을 위한 예물이 이제는 필요 없게 되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히브10,18)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제사와 윤리의 그 자기 의로움이 컸기에 그리스도의 대속그분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의 의미필요성간절함이 없기에 자신들의 의로움자신의 목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자신들의 그 빛이 어둠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헌금을 감사의 새 노래로 드릴줄 모르는 형식과 의무로만 했던 것이다.

그들의 예물이 그들 자신을 위한그 자신을 더 믿는그래서 버리지 못하는 그들의 속셈위선을 주님의 눈이 보신 것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16,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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