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교황님 말씀 이전 (교황청 뉴스)가 명칭 변경되었습니다.

사순 제5주일 삼종기도

스크랩 인쇄

김호열 [khoyeoul] 쪽지 캡슐

2011-04-19 ㅣ No.266

사순 제5주일 (2011 410)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함께한 신자들 그리고 순례객들과 삼종기도를 하시기 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하신 훈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이 이제 두 주 남았습니다. 이번 주일 말씀은 모두 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새로움으로 흘러넘치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죽음으로부터 살아나는 것을 바라는 부활입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죽음은 저너머를 볼 수 없게 하는 벽처럼 보여집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벽이 감추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영원을 염원하는 우리의 바람을 상징으로 표현하며, 그 벽의 저너머로 달려갑니다.

 

조국에서 멀리 유배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유배온 자들의 무덤을 열고 고향으로 돌려 보내주며 평화 안에서 쉬게 해주신다고 선포합니다 (에제 37,12-14 참조).

 

조상들과 함께 묻히고 싶은 사람들의 이 오래된 바람은 이 지상의 고됨을 끝내고 영접하게되는 조국에 대한 열망입니다. 이 생각은 아직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개인의 부활에 대한 생각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생각은 구약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나타납니다. 또한, 예수님 시대에도 모든 유대인들이 이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처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영원한 생명과 부활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 적지않은 의문과 많은 혼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기때문이고 신덕(믿음의 덕)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라자로의 부활- 안에서 우리는, 라자로의 누이인 마르타의 입을 통해서, 믿음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 하시는 예수님께, 그녀는 대답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 11,23-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것이다” (요한 11,25-26).

 

여기에 장애물을 깨고 넘는 진정한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벽을 무너뜨립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의 모든 충만함이 함께하십니다. 이것 때문에 죽음이 그분에게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라자로의 부활은, 하느님 앞에서는 잠과 같은 (요한 11,11 참조), 육체적인 죽음에 대한 그분의 완벽한 지배의 표징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 힘든 싸움이 되었고 직접적으로 십자가로 값을 치른, 또 다른 죽음이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의 삶을 망치게 위협하는 죄입니다. 이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그 이전의 생명으로 다시 돌아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로의 열림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도달한 새로운 땅의 열림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말합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로마 8,11).

 

친애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이심을 알고, “, 주님! 저는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요한 11,27)라고 믿음을 가지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부활에 이미 동참하고 계시는, 동정 마리아께 기도합시다.



2,799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