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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연중 제14주일."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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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칠등 [kcd159] 쪽지 캡슐

2021-07-04 ㅣ No.222909

07.04.연중 제14주일."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마르 6, 3)


빗소릴
듣는다.

제대로
들을 수 없기에
제대로
나눌 수도 없다.

인간관계의
번지수를
늘 잘못찾는
우리들 삶이다.

신앙이 시작된
곳에서 신앙을
다시 묻는다.

인간적인 것을
뛰어넘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참된 신앙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응원과
지지에
연연해하거나
집착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길을
아시고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늘 상대가
원하는 것을
놓치고 사는
어리석은
우리들
관계이다.

갇혀있음과
열려있음 사이에
따뜻한
복음이 있다.

저마다의
고향이 우리의
시작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시작점이시다.

예수님마저
당신의 고향
나자렛에서
냉대를 받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아신다.

아프게도
우리 마음 안에는
하느님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아신다.

비판과 폄하를
몸소 감수하신다.

믿음의 길은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존경의 길이다.

소중과 존중이
빠지면 역할만
남을 뿐이다.

예수님의 복음은
인격체의 고유함과
존귀함을
되찾아주신다.

고유한 인격은
정보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다.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고
아파하는
우리
형제들이다.

신앙은
거창하지 않다.

따듯한 기도가
따듯한 침묵을
배우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고향을 찾으신
예수님과
마음을 나누는
따듯한 마음의
주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와 홀로
사이에
마음을 울리는
복음이 있다.

사랑받고 싶고
배려받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다.

인간관계의
올바른 번지수는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듣고
기쁘게 실천하는
것이다.

복음의 꽃은
소통의 꽃이다.

하느님께서
답답한 우리를
위해 몸소
여기 이곳으로
오셨다.

이 시대의
기적과 치유는
소통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음은
소통의 복음이다.

자만에서
벗어나는
소통의
주일이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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