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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영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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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totoro] 쪽지 캡슐

2003-05-17 ㅣ No.52309

이번 주 화요일이면 첫 영성체 교육이 시작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외워야할 기도문이 16개나 되는군요.

신부인 저도 기도문이 바뀌어서

가끔 옛날 기도문을 외워 댈 때가 있는데...

우리 어린이들이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 첫영성체 대상자 어린아이 중에 한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첫영성체 교리 때문에 학원공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학부모의 판단 때문에... 앞으로 성당은 보내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말입니다.

알아본 결과 그 학부모는 예전에 개신교회에 다녔었고...

개신교회의 세례에 비해서 까다로운 첫영성체 교육이 맘에 안든다고 했습니다.

 

...

 

얼마 전에 동기 신부님과 이런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봤냐?"

"보았다"

"말도 안 된다"

"그럼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기도하는 것은 거짓부렁이냐?"

"ㅋㅋㅋ"

"ㅎㅎㅎ"

 

맞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체를 통해서 매일 하느님을 뵙습니다.

매일 새벽미사 오시는 교우 분들은 하느님을 뵙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맞습니다.

 

물론 성체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뵈었다 해서

문자 그대로 지엄하신 하느님을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만...

정확히 말해서 우리는 성체를 통해

사람이 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그분의 사랑의 신비를 뵙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매우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어린이들이 성체를 함부로 대하는가 하면.

입에 넣고 장난을 치기도 하고

일부 신자들은 성체를 쪼개서 갓난아이 입에 넣어주기까지 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거양성체때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성체거동시에 핸드폰 통화를 버젓이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위의 일들은 상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

정말로 가물에 콩나듯이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근데... 주지할 점은

예전에는 결코 벌어지지 않았던 일들이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가 첫영성체를 할 때에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시절이 많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시절이 수상해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성체의 예식과 그 정신은 그대로인데...

아무래도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다음과 같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첫영성체를 할 때...

동그래진 눈으로

방망이치는 가슴과 떨리는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너무 거룩해져서...

성체가 무슨 맛인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그때가 있습니다.

 

성체의 맛...을 느끼게 되었을 때부터...

그날부터 점점 더 영성체가 기계적이 되어갔던...

그날을 마음 아프게 기억합니다.

이제는 주님을 만나는 거룩함보다...

무슨 맛이 이럴까... 생각했던...

내일 새벽미사를 나오면 또 영성체를 할 수 있겠구나...

라고 미사를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마음이...

미사 한 시간이 지루해진 고집 센 소년의 마음으로 바뀌었을 때 쯤...

이미 나는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사제가 되어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틀릴까 혹은 죄 될까 두려움에 떨면서...

제의 방에서 수없이 혼자 미사를 지냈던 새사제 때의 마음이

이제는...

무언가 기계음이 섞인 미사를 지내는...

무언가 가슴 한구석이 아파오는...

그 무엇으로 변해가는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 마음 아픈 무엇도 느낄 수 없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은 아마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그날일수도 있겠습니다.

 

고해성사를 주면서...

아... 이렇게도 훌륭한 신자가... 라고 생각하며

사제가 더 분발해야지... 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 반면에...

십자가를 쓱 긋고

미간이 찌그러드는 일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본당의 첫영성체 하는 아이들...

집에서 곡소리 나기도 하겠고

코피도 쏟기도 할 것 같습니다.

제 성격에

머리통이 꿀밤으로 성할 날 없는 어린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꿀밤 때리는 신부도 마음 편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하는거 아닌가?’

’애들인데...’

’나는 뭐 잘난 게 있다고...’

 

모든 이에게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근사치에 접근할 뿐이죠...

그래도...

저는...

"이게 매일 새벽미사 나가서 꿀밤 맞고 기도문 못 외웠다고

 마음 졸이고 혼나가면서 받은 첫영성체인데...

 아까워서 냉담 못하겠다...

 나 못살게 군 신부도 나도 똑같이 못살게 굴어야 겠다..."

라고 생각해서

성당 열심히 나와서

하느님 말씀 하나라도 챙겨 갔으면 하는 것이

우리 첫영성체 반 어린이들에게 가지는 기대입니다.

 

우리 어린이들한테...

미리 사과합니다.

앞으로 벌어질 진짜...

피터지는 전쟁에 대해서...

 

우리 어린이 여러분...

주님을 모시는 게...

쉬울 줄 알았습니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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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야기는 들어도 좋고 안들어도 좋은 이야기입니다.

논쟁은 사절합니다.

그냥 저로서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입니다.

그런데 그냥 이런 생각들을 솔직하게 나누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들의 60평 아파트는... 남들 살만큼 사는 것이고...

보좌가 2년동안 잠시 머무르는 25평의 사제관은

과분한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30인치 티비는 남들에 비해 작은 것이고

사제관의 30인치 티비는 사치입니다.

잠시 2년 빌려 쓰는 것인데...

 

사제들이 모범적으로 사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삶은 꽃처럼 신자들 보기 좋으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도 그 향기에 취해서

모두 같이 한 형제로 하느님 앞에 살자고 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사제의 삶을 꽃꽂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신부님 참 훌륭하셔...

라고 말을 하면서... 자신은 아무 변화가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우리 신부님 왜 그렇게 산대...

라고 말을 하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살기도 하고 말입니다.

 

우리 신자들 참 말을 안들어... 라고 이야기하는 사제들도...

죄송한 애기지만...

주교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제들도 있습니다.

또 죄송한 애기지만...

강론은 그럴싸하게 하면서도

그렇게 강론대로 못사는 사제들도 있습니다.

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가난해야 한다고 한겨울에도 방에 불을 때는 것을 아끼는 수도자와

그와 함께...

매 겨울이면 감기를 달고 사는 수도자가 함께 살아갑니다.

 

머리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더불어 산다는 것의

성찰이었으면 합니다.

요즘 해보는 작업입니다.

 

 

고집스럽고, 오만함을 버리지 못한 사람의 생각이니...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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