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자유게시판

박은종신부 죽음의 의미3

스크랩 인쇄

오창익 [hrights] 쪽지 캡슐

2000-02-10 ㅣ No.8603

제가 일하는 곳은 서울 삼각지에 있습니다. 조금 전 점심을 먹고 산책(?)삼아 삼각지성당에 가보았습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고’

성당이 뭐 어디 가겠습니까? 들어가는 입구고, 성당어귀에 서있는 성모상이고 간에 뭐든지 그대로 더군요. 당장이라도 사제관에서 강아지 한마리와 함께 박은종신부님이 나오셔서, "어서 오세요, 바둑 한판 둡시다."라며 말을 걸어 올 것만 같았습니다.

박은종신부님 이야기를 듣고 바로 명동성당에 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강남성모병원에 갔을 때는 아직 소식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많은 분들이 오시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빈소에는 그 흔한 꽃 한송이도 없었습니다. 분향을 하고 넙죽 절하고 돌아서는데, 어떤 자매님이 "어머니, 저는 삼각지 신자입니다.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저희가 죄인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쳐다보니 어떤 자매님이 박신부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고 계시더군요. 뭐가 어떻게 되어서 죄인이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곡절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어떤 신부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 신부님과 통화하기 전까지는 박신부님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신부님이 알고 계신 바를 제게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조심스럽게 여쭈어보았지만, 그 신부님께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제게 당신이 알고 계신 바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박은종신부는 지난 1월 초 지리산에 혼자 올라 갔다.

2.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이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되었다.

3. 지난 2월 1일 발견되었고, 2월 3일 가족과 서울교구의 동기신부가 내려가서 시신을 확인하였다.

4. 서울교구는 사제가 자살을 했고, 또한 이 사실이 이미 소문으로 신자들 사이에 퍼졌기 때문에 명동성당에 빈소를 마련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고, 따라서 상주도 교구가 아닌 동기사제들이 되었다.

 

이것으로 제 의문은 풀렸습니다. 한 사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불경스러운 글을 이곳에 올렸다고 삭제를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 믿으며 이글을 계속 씁니다.

교구에서는 자살을 했기 때문에 명동에 모시지 않았다고 하지만, 교회법 때문에 그렇게 헀다고 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교회법은 잘 모릅니다. 또 자살한 사제를 교구가 나서서 추모했을때 생기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한 사제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이지, 그가 마지막 가는 길이 명동에서 떠나든지 아니면 병원에서 떠나든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업적으로 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죽음을 봤고, 또 많은 자살사건을 지켜봤습니다. 군이나 감옥, 경찰 등에서 빚어진 인권침해사건의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한번꼴로 군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습니다. 사체도 많이 보고, 부검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제가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느끼고, 또 확신하게 된 것은 "모든 자살은 결국은 타살"이라는 것입니다.

멀쩡한 아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군에 가서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면 부모는 당연히 "왜?"라고 묻습니다. 그가 군에 가지 않았다면, 그가 군에서 선임병들로부터 가혹한 구타나 따돌림, 또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받지 않았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이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그물망 속에서 사는 존재이기에, 어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건 분명히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또 많은 경우의 자살은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전태일, 조성만도 자살을 했지만, 우리는 그를 흔히 이야기하는 의미로 그냥 ’자살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올해 41세가 된 사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것도 지리산 골짜기까지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누군가는 책임있게 그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건 제가 몇차례 밝혔듯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느낌입니다만, 저는 박은종신부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촉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회개입니다. 누구보다도 순결한 영혼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사제가, 누구보다도 강직했고, 너그러웠으며,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약자에게 군림하지 않았던 사제가 목숨을 걸고, 아니 목숨을 끊어가며 외치는 그 한마디의 메시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배달된 평화신문은 박은종신부가 지리산에서 사고로 숨졌다고 했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건 사실도 아니고, 더구나 진실도 아닙니다. 사고라고 쓸 수밖에 없었던 평화신문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소문에 둔한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제 많은 신자들이 박은종신부 죽음의 진상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저 사고로만 묻어둘 일은 아닙니다. 그 진상을 알리고, 그 죽음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희년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어디서도 희년의 표징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저 유감일 뿐입니다.



3,565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