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자유게시판

맏며느리와 신부

스크랩 인쇄

김준희 [dellia] 쪽지 캡슐

2001-09-24 ㅣ No.24666

찬미 예수님!

*************

 

세상에 맏며느리와 참으로 비슷한 직업이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들, 도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성직자로 있는 사람들은 맏며느리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맏이로서의 의무만 주어지며

인간으로서 본능은 언제나 무시 당하며

남을 위해 몸과 마음이 잠시라도 편할 날이 없으며

조금만 방심하면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며

아플 권한도 없고

피곤해 할 여유도 주어지지 않으며

만능 해결사가 되어야 하며

알뜰이 살아도 모이는 것은 없고

평생 퍼주고 살아야 하며

무심코 내 뱉은 한마디 불평이 조만간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며

이사람 저사람 미주알 고주알 세상살이 힘든일 다 들어주고 다독거려 주어야 하며

그러지 않았다가는 자질을 의심 받게 되며

주위엔 언제나 트집 잡으려는 사람들이 늘 존재하며

수없는 잔소리 속에서 묵묵해 져야 하고

하는 일엔 아무런 보상도 없다.

 

장님 삼년에

귀머거리 삼년,

게다가

벙어리 삼년.....

 

남는 것은 흰머리요

떠나는 것은 청춘이라

쌓이는 것은 고독이요

흩어지는 것은 추억이며

가진 것은 온전치 못한 늙은 몸이요

손에 쥔 것은 빈 마음뿐이니......

 

누가 있어.....

 

젊은 날

남을 위해 희생했듯....

 

늙은 나를 위해 희생 해 줄꼬.....

 

게다가 성직자들에겐 몇가지의 고통이 더 있지 않은가?  섹스의 즐거움도, 자식 놈들 예쁜 짓도, 돈도 많이 벌고 출세 할 야망도 못 가지니 참으로 고통스런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먹성 좋은 신부는 먹는 것만 밝힌다고 흉이되고

목소리 큰 신부는 고분 고분하지 않다고 흠이되고

예쁜 여자만 한번 쳐다 봐도 음탕하다 소문 나고

마음 놓고 괴로운 마음 터 놓을 곳도 없으며

일생을

신자들의 즐거운 일보다 흉한 일 속상한 일들만 듣고 살아야 하니

말이 고백 성사지

그 많은 아픔과 고뇌들이 신부들의 머리속을 얼마나 힘들게 하겠나?

 

남편과 나는 아들이 어렸을 때 만약 아들이 원한다면 신부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커가는 아들 녀석을 보니 도저히 신부 될 자질은 눈꼽 만큼도 없는 것 같아 일찌 감치 포기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고, 정말이지 신부 되는 것- 그것 보통일이 아닌것 같다.  이곳 게시판에 올라 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어느 부모가 자기 아들을 신부로 보내겠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게 성직자의 길이 아닌가?   그러나 만약, 내 아들이 신부가 되었다면 혹은 내 딸이 수녀가 되어 그 것이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지어 진다면 나는 아무리 못나고 형편없는 성직자도 다 용서하고 감싸 안아 주었을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러 하겠지요?

 

우리는 사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수 많은 십자가를 성직자들 어깨에 지운다.  

청렴 결백하라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라

살신 성인의 모습을 하라

성인 군자 모습을 하라

예수의 모습을 하라 하면서  각자가 생각하는 예수의 모습을 성직자가 가져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십자가를 나 대신 성직자가 대신 져 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행여 아닐까?

당신과 날더러 대신 가라고 하면 가지도 못할 어려운 길을

대신 가주는 사람이

조금 모자라면 어떻고 조금 흉이 있으면 또 어떻고, 조금 못 마땅하면 또 어떤가?

전지 전능하신 힘을 가지신 우리의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땀도 흘리시고 숨도 차시고 목도 마르셨으며 몇 번이나 넘어도 지셨다.

우리는

아무도 예수라는 작자가 왜 넘어 지냐고 못 마땅 해 하지 않는다.

그 분이

넘어 지셨을 때 더욱 가슴 아파하며

그 분이

목 말라 하셨을 때 물을 떠다 드렸으며

그 분이

땀을 흘리시고 힘들어 하실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예수님 처럼 우리 인간을 구원하러 이땅에 오지는 않았지만

분명 성직자들은

우리가 지지 못하는 엄청난 무게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분명하다.  바보처럼.....

 

우리......

그들이 넘어 질 때

일으켜 세워주고

 

우리.....

그들이 힘들어 할 때

힘이 되어 주고

 

우리......

그들이 땀 흘릴 때

같이 기도 해 주면 안되나요?

 

미사가 끝 날 때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에 대하여 우리는 수긍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사제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 이지요.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한 그 날 부터 우리 자신이 사제로서, 양으로서 종으로서, 이웃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과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끊임 없이 해야 하는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프로는 프로를 비판 하지 않는 답니다.

이해하고 우리 모두 같이 가요......

못 마땅하고 모자라는 신부의 모자라는 부분은 교우님들이 이곳 저곳 꼭 꼭 메꾸어 채워 주세요......

그래서, 이땅에 많은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나오 실 수 있도록 말이에요.

 

오늘 많은 성직자들과 우리 성당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드려 봅니다.

 

 

 

 

 

 



964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