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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도둑 선생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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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관 [gabie] 쪽지 캡슐

2002-04-10 ㅣ No.31893

도둑 선생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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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선생님! 당신은 저에게 부활절에 색다른 은혜를 선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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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선생님!

 

마음을 가라앉혀 선생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주셔서 말입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이 부활절 첫 주간과 오늘까지 열흘 동안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선생을 증오하는 미움의 죄를 지어왔습니다. 선생께 대한 미움으로 이 부활절의 기쁨을 빼앗긴 것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원망스럽습니다. 이렇게 원망스런 마음을 삭이기 위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아침이 되면 이 편지를 선생께 부치고 싶습니다만, 선생의 주소를 알 수 없으니 여기에 올립니다.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선생을 만날 수만 있다면 서로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선생과 소주 한 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이 한 밤에 스며드는 적적함을 선생한테 도둑맞고 싶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선생의 마음한테서 엿볼 수 있는 단순성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고마운 도둑 선생님!

선생을 고마운 분이라 일컫는 저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선생께서 다녀가신 그 날 밤 이후, 한 열흘 우울하고 답답했던 마음을 오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꾼 사연이 있습니다.

선생께서 다녀가신 그 날 밤은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 밤이었지요. 그 전 주간 즉 성주간 수요일부터 저는 매우 바빴었답니다.

성목요일의 성유축성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수요일 오후에 대전에 가서 어머님 드리려고 사서 가지고 갔던 생선으로 회를 치고 조개(바지락)국을 끓여서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밤을 지냈지요. 그 바람에 새벽녘에 잠을 자서 성목요일 오전의 성유축성 미사 후 돌아오는 길에 너무너무 피곤했는데, 우리 안면도의 작은 본당 공동체와 함께 하는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와 이어지는 밤샘 성체조배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성금요일에 단식재 지킨 신자 분들과 성당 안팎 대청소, 저녁 시간의 주님 수난 예절, 그리고 다음날의 부활 성야와 대축일 준비로 그 날 밤 날짜를 넘긴 다음에 새벽잠을 자게 되었는데, 성토요일 오전에는 물때를 맞춰 신자 몇 분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 그 날 밤 부활 성야 전례 후 벌일 공동체 잔치를 위해 조개를 캐고 바위 틈 미역을 땄지요. 그리고 그 오후 부활 성야 전례 준비로 바쁜 시간에 갑자기 찾아오신 도지사님 영접, 그리고 이어서 예기치 못한 손님들 때문에 저녁 밥 먹어야 할 틈도 없이 허둥지둥 전례 연습 마치고 그 부활 성야 전례를 지냈지요. 전례를 마친 한 밤의 공동체 잔치 후 뒷정리와 설거지를 함께 한 다음에 또 간신히 새벽잠을 잤지요.

그렇게 맞이한 부활 대축일 오전, 미사와 이어서 공소에서 오신 신자 분들을 포함하여 전신자를 위한 공동체 부활 축일 점심 잔치, 그리고 오후 시간으로 이어진 사목회…

 

그렇게 지낸 부활 대축일의 오후는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 저였답니다. 그 날 오후의 사목회의에서는 더욱 마음까지 곤죽이 되었지요. 공동체 친교실 신축 계획을 논의하는 회의였지요. 본당의 사무실도 없고 신자들께서 미사에 오셔서 친교하실 공간도 없는 우리 공동체의 숙제에 대한 논의였지요.

먼 데서부터 미사에 나오시는 신자들께서 비바람과 추위를 피해서 대기하실 장소가 없는 우리 공동체의 실정을 아파하는 저의 마음을 읽기보다는 재원 부담이 짐스러워서 친교실 신축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우리 신자들이지요.

우리 본당의 사목회의를 열어봐야 별도의 대표성이 있는 사목위원들의 회의라 할 것도 없지요. 주일 미사에 나오시는 신자 분들이 30여명이니, 바쁘다고 집에 먼저 가버린 분들을 제외하고 모이면 그것이 사목회의랍니다. 그런 우리 교우들께서는 회의하자고 해서 모이면 발언하시는 분들이 아니라 주임 신부가 하는 말이나 듣고 앉아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런 우리 신자들께 본당의 현안을 알아듣도록 여러 가지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도무지 반응이 없으니 말입니다. 몇 분이 의견을 제시합니다만 말끝은 항상 "신부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지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헤어진 다음에 뒷소리로 반응을 보내옵니다. 친교실 신축계획에 대한 그런 회의 후에 들려오는 그 뒷소리는 "우리가 낼 돈 없다."는 것입니다.

 

그 날, 부활 대축일 공동체 잔치 후의 회의에서 말씀도 없던 분들이 헤어질 때 서로 던진 뒷소리가 "우리가 낼 돈 없다."는 것이었다면서 본당 회장님께서 저에게 돌아와 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뒷소리의 뜻은, 그런 집 당장 지을 필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분위기를 확인하고 맥빠진 저는 파김치가 된 몸을 의자에 걸치고 있다가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방바닥에 구부리고 잠에 떨어졌던가 봅니다.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어두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식사 했느냐고 묻는 신자 분의 전화였습니다. 최근에 인천에서 이사오셔서 민박집을 운영하기 시작하신 분의 전화였습니다. 친정에서 가져온 씀바귀가 있는데 먹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녁 밥 지어먹을 일이 까마득하던 저로서는 반가운 초대였습니다. 회장님께서 그 날 교우들의 교무금과 헌금을 정리해서 수입결의서 작성해놓은 것을 기장하고 일지를 작성할 일이 저의 아직 끝나지 않은 그 날의 일과였습니다만, 그 신자 분의 초대에 따라 저녁 식사를 하러 갔었지요.

 

친애하는 도둑 선생님!

그 신자 분 댁에서 씀바귀 나물과 비지 찌개로 저녁 식사를 한 후 소주 마시며 더 앉아 있으라는 제의를 뿌리치고 돌아온 제가 자동차에서 내릴 때 마당의 우리 태풍이(나의 친구 풍산개)가 뒷동산을 바라보며 거세게 짖어대기에 저는 태풍이를 꾸짖었답니다. "태풍아 이 놈아,너 왜 갑자기 짖냐? 무슨 도둑 고양이 지나갔냐?" 이렇게 야단치면서 태풍이를 쓰다듬어 주고는 성당에 올라가 한참 동안 기도를 했지요. 부활 대축일을 저 나름으로 잘 지낸 것을 주님께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교우들의 친교실을 짓겠다는 저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교구장 주교님께서 사순절 특별헌금을 모아 주시기로 하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활 주일의 저녁기도를 바쳤지요.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미사 준비로 제대를 정리하고 그 날의 장부와 사목일지를 마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저의 방에 내려왔지요.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안 분위기를 느낀 것은 아마 제가 신자 댁에서 성당에 돌아온 30여분후의 일입니다.

 

친애하는 도둑 선생님!

저는 그 시간에 방에 들어와서 방바닥에 웬 흙 발자국이 찍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이 저의 방에서 선생의 작업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답니다. 마저 기록해야할 문서 정리를 마친 다음에 물 마시려고 부엌에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지요. 부엌 창문턱과 싱크대 위의 흙덩어리, 부엌 바닥의 어지러운 흙발자국, 그리고 부엌 뒷문 고리가 파괴된 것을 발견하고 그 문을 밀어보았을 때의 순간…!

 

저를 놀라게 하신 선생님!

고리가 파괴된 부엌 뒷문을 밀어보았을 때의 그 순간, 제가 어땠는지 아세요? 캄캄한 뒷마당의 섬뜩함이 확 밀려들어오던 그 순간…! 머리끝이 솟구쳐 오른다는 것이 그런 순간의 느낌 맞겠죠…? 열흘이나 지난 지금도 부엌의 다용도실 컴컴한 문이 삐끔 열려 있으면 소스라친답니다.

 

그러나 고마운 선생님!

그 날 밤 순간의 그 느낌을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전화로 우리 본당 회장님을 부른 다음에, 선생께서 저의 책상 서랍을 부순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답니다. 그리고는 선생의 작업 흔적을 뒤늦게 알아차린 저의 둔감함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저의 침실 문이 열려있던 사실을 의아해 했던 저의 둔감함이 다행스러웠습니다. 저는 저의 침실 문을 항상 닫아 놓는 버릇이 있습니다. 왜냐면, 저의 잠자리를 타인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나갔다 돌아와서 침실 문이 열려있는 것을 그 날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황급히 나가느라고 제가 열어둔 채 나갔나부다 하고 생각한 것이 참 다행입니다. 저 없는 동안 선생께서 저의 침실 문을 열었다는 것을 제가 들어오면서 느꼈다면 아마 저는 방에 들어오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선생께서는 저의 책상 서랍에서 취하실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시고는 저의 침실을 여시던 순간에 제가 돌아온 자동차 소리를 듣고 부엌 뒷문으로 달려나가 뒷동산으로 해서 급히 돌아가실 길을 가신 것이었지요. 태풍이의 작별 인사를 들으시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고마운 선생님!

제가 저녁 시간 외출하게 되면 방과 현관의 전등을 켜두고 나간다는 것을 선생께서는 이제 아셨지요? 그래서 저의 방전등만 켜진 채 부엌의 전등은 켜지 않으시고 그 뒷문을 파괴하시어 이용하셨지요. 그러시느라고 시간이 좀 걸리셨고, 책상 서랍 부수느라고 시간이 걸려서 침실 문턱까지만 발자국 남기시고 돌아가신 것이었지요. 그러하실 한 시간 정도이길 망정이지, 제가 신자 댁에서 소주 마신다고 늦게 돌아 왔더라면 저의 침실에서 하셨을 선생의 작업을 상상하면 끔찍하답니다. 더욱, 제가 돌아와서 전등불이 꺼져있는 캄캄한 방에 불쑥 들어와 스위치를 올리면서 선생과 상면했다면 어땠을까요…? 상상만으로도 그런 순간이 끔찍하군요! 그래서 그 정도로 작업을 중단하시고 돌아가신 선생이 고마운 분이시죠!

 

그래서 고마운 선생님!

그 정도로만 고마운 게 아닙니다. 우리 본당 회장님이 급히 오셔서 선생님의 방문 흔적을 여기 저기 자세히 살펴본 다음의 이야기는 더 하지 않겠습니다. 창문을 부수기 위해 밖에서 사용하신 여러 가지 흉한 물건들과 태풍이 집 근처에서 시도하셨던 작업 흔적을 확인하고 더욱 증폭되는 머리끝 느낌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정도이시길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태풍이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점을 더욱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로만이 아니고 더욱 고마운 선생님!

그 날, 기쁜 부활 대축일의 밤, 저를 그렇게 놀라게 하셨기에 저는 그 다음날에 이른바 ’엠마우스행’이라는 저 개인의 휴가를 할 수가 없어서 여기 안면도로 바람 쏘이러 오신 여러 신부님들을 뵈올 수 있었는데, 예기치 못한 십 수년만의 만남을 이룬 저의 정다운 옛 선배 신부님 두 분을 뵈옵게 됐습니다. 선생의 그런 방문이 없었더라면, 제가 어딘가로 놀러 가는 바람에 25년 전 군종 생활 때의 동고동락하셨던 신부님과, 그리고 20년 전 유학 시절 함께 지낸 신부님과의 그렇듯 기쁜 해후를 맛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더 특별히 고마운 선생님!

선생께서는 저에게 마음을 다스리게 해주셔서 더욱 고마운 분입니다. 사실 선생의 그런 방문 여파가 아니더라도 저는 부활 대축일날 오후까지 피곤한 중에 공동체의 친교실 신축 계획에 대한 회의 성과를 보지 못한 자괴감과 무력감 때문에 오늘까지도 우울했을 것입니다. 기쁜 부활 축제의 기간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선생의 작업 흔적을 고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러 가지 생각 중에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여기 안면도 성당의 현 실정 상 건물이 더 있으면 저 혼자서 관리하기 역부족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무실과 친교실과 강당이나 기타 시설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함께 일하며 지킬 직원이 없다면 저만 혼자서 더욱 지녀야 할 선생 같은 분에 대한 두려움이 가중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본당의 재정형편으로는 사무장이나 식복사 채용을 하기가 앞으로 수년 혹 저의 임기 내내 불가능한 실정이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우리 공동체 신자 분들께서 현재 사용하시는 비닐 하우스 친교실은 그 날 밤 선생께서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더군요. 아마 제가 사는 사제관도 성당 아래층이 아니라 비닐 하우스였더라면 선생께서 방문하지 않으셨을 것 같네요!

 

그래서 정말 고마운 선생님!

선생께서 저의 생각을 바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제의 생활비도 월간 30만원 밖에 주지 못하시는 우리 공동체 교우들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공동체가 어느 세월에 식복사나 사무장 고용력을 갖추겠습니까? 그 날, 부활 대축일과 부활 성야의 헌금과 교무금 전부 60여만  원이었답니다. 그것을 선생께서 저의 책상 서랍에서 발견하지 못하신 까닭은 미사 후엔 늘 우리 사목회장단이 간수하기 때문에 저의 방에 돈을 보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생께서 저의 침실에 들어가셔서 우악스런 연장으로 세밀하게 여러 작업을 하실 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60여만원은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고마운 선생님!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그 날, 우리 부활 대축제의 헌금과 교무금이었기에 그 만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일반주일엔 대개 20여만원이나 고작해야 30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사제관에 그것을 보관한다고 해봐야 선생의 방문 성과는 이번에 제가 창문과 부엌문 고친 비용만도 못한 것입니다. 선생께서 그 날 밤에 성과는 거두지 못하셨지만, 저로서는 선생 때문에 허리가 휘청했답니다. 그런 판국에 건물을 지을 여력을 바라겠습니까? 그리고 더욱 여러 건물을 지키고 관리하겠습니까?  하여, 선생 때문에 저의 생각을 바꾸었답니다. 건물 지을 계획을 상당히 연기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선생께서는 저에게 편한 마음을 가질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부엌문을 고치고 창문 쇠창살을 보수하느라고 열흘 가량 우울하게 지냈지만, 그런 그 기간은 저의 생각을 고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의 공동체 실정에 대하여 냉철하게 짚어볼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로운 부활 축제의 기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부활 대축일의 밤에 방문하신 고마운 선생님!

그래서 이렇게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진짜 친구로 사귀고 싶습니다. 선생께서 어느 분이신지 만일 알 수 있다면 이런 대화로 소주 한 잔 같이 하며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욱 선생께 감사의 말씀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의 이 컴퓨터를 손대지 않으신 점입니다. 이 컴퓨터 없어지면 그 물건값이 문제가 아니고, 제가 우리 신자 분들에 관련되는 많은 정보와 우리 성당 자료를 상실하고 어떻게 또 다시 회복하겠습니까…!  

그래서 진심으로 진짜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저의 이 컴퓨터는 손 타지 말아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컴퓨터(인터넷)를 통하여 친구 선생께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진심으로 사귀고 싶은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생께서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라고 믿습니다. 서랍 속에 있을 만한 것(돈)만 기대하시고 단순한 작업만 하신 것으로 보아 전문 선생은 아니실 것이 분명합니다. 틀림없이 청소년 친구이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주 단순한 마음이신 분 말입니다. 마음은 깨끗한 사람, 젊은 마음, 그러므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실 수 있는 단순 행동의 충분히 아름다운 분일 겁니다. 세상의 때로 찌든 정치인이나 사업가는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진짜 도둑 선생은 그런 세상의 때로 찌든 사람들이니까요…!

 

부활 축제의 밤! 그 날 밤은 우리 성당에 어떤 물질적 풍요가 넘쳤을 것이라 짐작하신 것이 선생의 마음이 일으킨 착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은 단순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귀고 싶은 선생님!

부탁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런 단순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그렇듯이 우리 서로 마음도 몸도 건강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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