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자유게시판

인생길 - 함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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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hsson] 쪽지 캡슐

2002-04-13 ㅣ No.32009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가수 최 희준씨의 노래 <하숙생>을 한 두 번쯤은 흥얼거려 보셨을 겁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로 시작되는 노래 말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그룹 god 도 인생을 길에 비유하더군요. "내가 가는 이 길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 가는지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네. 알 수 없네. 알 수 없네.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는지 모르는 불확실성, 제대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젊은이들의 고민이 그대로 배어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의 인생 길은 유감스럽게도 잘 닦여서 편편한 도로도 아니고,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도 아니지요. 굽이굽이 굴곡이 많고 높낮이도 고르지 않은 울퉁불퉁한 산길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 길의 반 이상은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흘리면서 힘들게 걸어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입니다. 이렇게 가파른 오르막이 많은 산길과 같은 인생 길이지만, 그래도 그 길에는 간혹 목을 축일 수 있는 샘물이 있고, 땀을 식혀주는 한 줄기 산들바람이 있기에, 또 길동무가 있기에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나봅니다.

 

  이번 주일(부활 제 3주일) 복음인 루가 복음 24장 13절 이하에 언급된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들은 인생의 도상에서 가파르고 험한 비탈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자렛 사람 예수를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메시아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는데, 그분이 너무도 허망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크나큰 실망과 좌절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던지 그들은 길을 걸으면서, 한때 가슴 벅차게 했지만 이제는 깨어진 꿈과 희망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 제자가 한참 길을 걷고 있을 때 나그네 한 사람이 그들 곁에 다가와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고심하던 문제들에 대해 성서를 들어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줍니다. 인생은 고통과는 떼어놓을 수 없다고, 고통을 거쳐야 비로소 영광에 이를 수 있다고, 성서에 예언된 구세주도 결국 이런 길을 걸어야 했다고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낯선 나그네의 설명을 들으면서 제자들은 깨달음으로 머리가 환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는데(루가 24,32) 어느덧 삼 십리 길을 다 와서 목적지 엠마오에 도착했습니다. 그 나그네는 계속해서 길을 갈 기미를 보이자 제자들이 아쉬움 속에 그를 붙잡습니다.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 가십시오." 나그네는 제자들의 청에 응낙해서 그들과 함께 머무르고, 제자들은 그분과 함께 빵을 나눌 때 비로소 눈이 열려서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는 길을 떠날 때의 실망과 좌절을 털어 버리고 기쁨에 가득 차서 다른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고통을 안겨 주었던 도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갑니다.

 

   험하고 가파른 산길에 비유되는 인생 길, 그 길을 걸으며 힘들고 두렵고 불안한 때도 많지만,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들이 있기에 인생을 살만한 가치가 있나봅니다. 깨진 꿈을 안고 절망에 잠겨서 엠마오로 돌아가던 두 제자들에게 깨우침의 말씀으로 힘과 용기를 갖도록 해주신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서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내 가족, 친지의 모습으로 때로는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셔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계속 길을 가라고 격려해주십니다. 또한 그분은 성서의 말씀을 통해 깨우침을 주시고 성체 성사라는 영적 양식과 음료로써 힘을 북돋아주십니다. 비록 우리의 인생 길이 굽은 길, 험한 길, 가파른 길이라지만, 우리에 앞서 이 길을 가신 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말씀하신 그분이 우리의 길동무가 되시기에 우리는 희망을 갖고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이야기는 우리가 미사 중에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두 제자는 길을 가면서 서로 자신들의 고민거리를 솔직하게 나누던 중에 낯선 나그네를 만나 그분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는 미사 중의 말씀 전례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두 제자가 빵을 나눌 때 비로소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는데, 이는 성찬전례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성서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열렸고, 이어서 성찬을 나누면서 주님을 더욱 가깝게 체험합니다. 만일 우리가 미리 좀더 잘 준비하고, 그래서 주의 깊게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새겨듣는다면 우리 역시 두 제자들처럼 마음이 열리고 뜨거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열리고 뜨거워진 마음으로 성체를 모시게 되면 우리 역시 두 제자들처럼 주님을 좀더 가깝게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허겁지겁 미사에 와서 흐트러진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채 성서 말씀을 듣는다면, 그 말씀이 제대로 머리와 가슴에 와 닿기란 어렵지요. 바쁘지만, 그래도 (15분 정도) 시간을 내서 미리 그 주일 성서 말씀을 읽고, 나의 삶과 연결지어 생각해보고 차분한 미사에 온다면, 분명히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요? 독서, 화답송,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건네주시려는 주님의 나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래서 굳어 있던 우리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이렇게 준비된 마음으로 성체를 영하면 주님을 좀더 확실하게, 분명하게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간 없다고 핑계대지 맙시다. 예뻐지기 위해서 화장하는 시간, 미장원 가는 시간, 건강해지기 위해서 헬스클럽에 가는 시간, 조깅이나 다른 운동하는 시간은 잘 내지 않나요? 영혼의 아름다움과 건강을 위해서 시간 좀 내는 것은 어떻지요? 우리 각자가 아름답고 건강한 영혼이 될 때 비로소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 겁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침울하다면 누가 그 사람이 전하는 말을 믿겠습니까? 우리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말씀과 성체를 통해서 만날 수 있도록 시간을 내고 노력을 해보자고요!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가 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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