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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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5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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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2-04-11 ㅣ No.31939

 나탈리아는 학원에서 이제 중학생인 녀석들과 함께 공부를 가르치며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한답니다.

 

성당을 가면 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 또 직업전선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합니다.

 

기특한것은 자신의 일과 성당에서의 봉사활동을 엮어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학원에는 성당의 교리반 학생들을 받아 들이질 않습니다.

 

자칫 그런식의 사업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수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저역시 그러한점엔 대찬성이고 말입니다.

 

가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저녁때 중학생들 학습지를 펴놓고 공부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그녀가 펴놓은 책을 힐끗 쳐다보기도 하지요.

 

헌데...이거...장난이 아니더군요.

 

수학이니 영어니 하는것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계사 같은 내용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제가 묻곤 하죠.

 

"그거 중학생들 학습지 맞아?" 이렇게 말입니다.

 

모르긴 해도 저희들 배울때와는 수준이 비교가 안된다 싶더군요.

 

하루는 오기가 나서 문제지를 달라고 해서는 한번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한문제를 덜컥 맞혔습니다.

 

그래놓고는 무슨 사시에나 합격한것인양 온통 큰소리를 나탈리아에게 뻥뻥 쳤습니다.

 

"봤지? 봤어?...험! 험! 모르는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알았지?"

 

그리고 다음 문제를 의기양양해서 풀어봤습니다.

 

나탈리아는 저의 엉뚱한 호기에 웃음이 나는지 깔깔 대면서 제가 틀려주기를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아~

 

처음 한문제는 어쩌다 맞혔지만 다음 문제부터는 아리까리 한것이 이것도 답인것 같고 저것도 답인것도 같은게 한마디로 영 헛갈리더라구요.

 

할수없이 통박을 잡아서 찍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틀렸지 뭡니까?

 

여기서부터 저의 수난은 시작 되었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는둥, 화장실이 급하니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둥 별별 핑계를 대가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그녀는 저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그녀는 깔깔 대면서 끝까지 풀어보라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니...뭐...풀라면 못 풀겠습니까?...까짓...

 

하지만 갑자기 화장실이 급한걸 저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ㅠ.ㅠㆀ

 

"놔! 안놔? 나 그냥 바지에다 싼다!" 이렇게도 협박을 했지만 통하질 않더군요.

 

하는수 없이 실갱이 끝에 몇문제 풀어봤지만 답사이로 막가는 저의 통박이 내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몇개는 맞혔습니다.)

 

그후로 전 쓸데없이 약점을 잡히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세계사 였던지라 툭하면 제게 "중세 유럽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질문을 해댑니다.

 

아니? 제가 언제 중세유럽에 살아나 봤습니까?

 

작금의 유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는 판국에 옛날 유럽일을 알게 뭡니까?

 

괜히 남 공부하는데 알랑 댔다가 쓸데없이 약점 하나 잡혀서는 오금을 못펴게 되었지 뭡니까?

 

그러던 어느날 나탈리아가 저녁때 집에 와서는 깔깔 거리며 웃다가 또 씩씩 대기도 해서 이 여자가 실성했나? 싶어서 왜그러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대뜸 "우리 학원에 꼭 자기같은 학생이 하나 있어서."

 

엥? 나같은 학생?...뭐 그렇다면 상당히 똑똑한 학생이라는 뜻일텐데...

 

나탈리아의 학생들중 한 학생이 학교에서 노트 필기를 해왔는데 나탈리아가 보고 기절초풍을 했다지 뭡니까?

 

신라시대 화랑도를 적은 원광법사의 세속5계 라는거 말입니다.

 

이것을 미리 나탈리아가 설명도 해주고 뜻도 다 가르쳐 주었는데 막상 이 학생이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이 불러주는데로 받아 적는데 세속5계를 그만 채소5계로 적었다지 뭡니까?

 

그래서 나탈리아가 채소5계가 뭐냐? 하며 나무랐더니 이학생은 끝까지 굽히지 않고 분명히 우리 선생님이 불러줄때 채소5계라고 불러줬다고 자신은 떳떳하노라고 우겨대더라는 겁니다.

 

나탈리아는 기가 막혔지만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집에까지 와서는 깔깔 대며 웃지 뭡니까?

 

저도 듣다가는 그만 웃음이 팍! 터져나와서 둘다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한참 웃다가 나탈리아가 웃음을 딱 그치더니 "자긴 왜 웃어?"

 

"헉!...ㅠ.ㅠ"

 

우리야 듣고보면 우습지만 그 학생은 세속5계에 별 관심을 안보이다가 선생님이 칠판에 써 준것도 아니고 불러준건데 채소5계로 들릴법도 하지요.

 

원광법사의 채소5계라...

 

오랜만에 그 학생덕에 웃을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학생시절 그와 유사한 일이 좀 많았습니까?

 

역사시간에 실컷 그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받아적고 열심히 달달 외워서 시험에 응했건만 내용은 달달 외운 관계로 모르진 않는데 그만 이게 어느나라 문화적 특성인지를 막상 몰라서 헤맨적도 꽤 있었습니다. (이런 유사한일 많았지요?)

 

전 나탈리아가 부럽습니다.

 

요즘 중간고사를 대비해서 학생들과 씨름하느라 늦게 집에 오지만 학생들과 생활하는것이 그렇게 재미 있을수 없다며 자신의 일을 즐거워하는 그녀가 부럽기도 합니다.

 

갑자기 그 올망졸망한 중학생 녀석들이 상상이 되어서 그만 가끔 일하다가도 혼자서 풋! 하고 웃기도 합니다.

 

사실 그 시절이 그립고 부러워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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