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자유게시판

성 바오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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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정 [annateresa] 쪽지 캡슐

2003-03-25 ㅣ No.50230

 

저와 서로 알게 된지가 아주 오래지는 않지만,

허물 없는 편안함과 친근함으로 꽤나 가깝게 여기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도 역시 집안이 가톨릭이라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바오로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습니다.

저와는 이성이지만, 동성처럼 편한...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네 집안 분위기는 저희 집안과 달라서

부모님이 이끄시는 대로 얌전하게 어려서부터 성당 잘 다녔던 저와 달리

바오로는 그냥 혼자 놔두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마음 내키는대로 이리저리

개신교회에도 갔다가 절에도 갔다가 하면서 지냈었더랍니다.

 

그러다가 개신교회의 뜨거움과 열렬함에 푹 빠져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장로교던가 하는 개신교회에 다녔었다나요.

 

꼬맹이 어린시절부터 서른 넘어서까지 다녔으니

바오로에게는 그 개신교회가 정든 집과도 같았을 것이고,

순수한 성품에 신앙도 깊었을 터였습니다.

 

바오로의 어머니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독실한 천주교인이신데

아들이 개신교회에 빠진 것을 보고 안타까워는 하셨지만

그렇다고 다니지 말라든가 하는 식으로 간섭은 아니하셨더랍니다.

 

 

그런 친구 바오로가 몇 개월 전, 홀연히 성당에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천연덕스런 얼굴로 성당에 들어서서

원래 늘 다니던 곳인 양, 여유로운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아서는

"나 돌아왔다" 고 하더군요...

 

(위의 저 장면은... 사실... 좀 극적 과장입니다...^^)

 

 

천주교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이 열심히 개신교회에 다니다가

다시 천주교회로 돌아온 것이니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요.

개종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적절치 않겠죠. 귀환(歸還)이라고나 할까요.  

 

 

사내녀석치고는 주절주절 수다스럽고 유머러스한 성격이지만,  

개신교회를 떠나오게 된 경위를 물으니

그저 웃으며 얼버무릴 뿐, 자세한 이야기는 꺼려 하더군요.

 

아마도 그 안에서 무언가 큰 상처를 받은 것이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은,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개신교회에서는 자기네 종파가 아닌 다른 크리스트교를 이단으로 간주하였으며

물론 그 이단 중에는 가톨릭도 포함되어 있었더랍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워낙 성격이 순하고 좋아서 크게 구애받지 않고

다 좋으면 좋은거지 뭐... 하고 다녔던가 봅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매우 강경한 사람을 만난 모양이었습니다.

 

가톨릭은 이단이니 가톨릭을 믿는 사람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노라고,

어둠을 버리고 빛을 찾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노라고,

어떠한 여지도 남기지 않고 몰아붙이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지위에 있는 누구였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느낌상으로 그저 비슷한 연배의 친구 같지는 않고

지도자적인 강력한 입장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성당에 그토록 열심히 다니시는 착하기만 하신 우리 어머니...

그런 우리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말하는 그들이 싫었더랍니다.

 

그래서 정든 개신교회를 미련 없이 떠나

어머니가 기다리시는 천주교회로 돌아왔노라고

바오로는 그렇게 무심한 듯, 아주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착해서 남한테 상처 주는 말은 한 마디도 차마 못 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화내는 법 없이, 오히려 속 없어 보일 만큼 웃기만 하는 바오로...

그 밝은 얼굴 이면에는 남모르는 아픔이 있음을,

의외로 상처 잘 받는 여린 마음이 있음을 저는 압니다.

 

무심한 듯 말하는 얼굴에 슬쩍 스치는 어두운 그림자가

바오로의 가슴에 맺힌 상처를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천주교가 정말 좋습니다.

 

"나와 다른 너"는 절대로 틀렸다고

"나와 같이 되지 않으면" 너는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그렇게 외쳐대며 상처를 주는, 좁은 가슴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이 일시적으로 다른 길을 가고 있더라도

질책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시냇물처럼 조용히 흘러가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고향 마을 어귀의 소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바오로의 어머니처럼 부드럽고 넉넉한 가슴을 지닌 우리 천주교가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그래서 성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걸까요?

 

 

제 친구 바오로는 성씨가 춘향전의 주인공과 같은 "성"씨입니다.

 

그 이름 그대로 "성 바오로"와 같이 방황을 접고 돌아왔으니

이젠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우리의 빛이 되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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