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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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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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3-05-24 ㅣ No.52536

 아침 미사가 끝나면 명동 성당을 한바퀴 도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계성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꼬마들을 보기도 하고, 계성 여고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기도 합니다. 아직 하루를 시작하기 전인 명동은 그 시간이 가장 조용하고, 깨끗합니다.

 

  직장인들은 출근하기 전이고, 아침의 공기는 이곳이 서울인가 할 정도로 시원함을 줍니다. 명동 성당 뒤편의 성모상에는 누군가를 위한 촛불이 그렇게 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울의 한 복판에서 아침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시간은 10분 정도 됩니다. 그 10분 동안 세상은 참 많은 변화가 있겠죠. 요즘은 초 단위로 살아가는 세상이니까요?

 

 명동 성당을 한바퀴 돌면서 명동 성당을 지탱하는 벽돌을 봅니다.

단체 사진을 찍으면 그 많은 사람 중에 제가 한명 있듯이 그 많은 벽돌들이 명동 성당을 그렇게 지탱하고 있습니다.

명동 성당은 어느 하나가 특출 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벽돌들이  한국 천주교회의 큰 얼굴을 바쳐 주고 있었습니다.

 

 제방 책상 앞에는 동창들의 얼굴들을 볼 수 있는 동창 사진첩이 있습니다. 어느 동창 하나 “내가 최고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 최고는 다른 동창들의 얼굴이 있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 앞에 나는 그저 벽돌 한 장 일 뿐이라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는 그 앞에 주춧돌이고 싶고, 나는 그 앞에 드러나는 특별한 존재이고 싶습니다.

오늘도 명동 성당의 그 벽돌 한 장은 아무런 말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그저 존재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벽돌 한 장이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이유도 명분도 참 그럴 듯 했습니다.

 

 일본의 대동아 전쟁도 그랬습니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도 그랬습니다.

물론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그랬습니다.

역사는 그런 사실을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에도 그런 일들은 있었습니다.

조국 근대화의  정부에도

정의 구현의 정부에도

보통 사람의 정부에도

문민과 국민의 정부에도...

 

 몇몇 사람들이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합니다.

삼보 일 배를 하면서  주춧돌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벽돌 한 장의 힘을 보여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링겔을 맞으면서 삼보 일 배를 하시는 스님도 볼 수 있습니다.

분단의 높은 벽을 통일의 꽃과 함께 넘었던 신부님도 삼보 일 배를 하십니다.

그리고 함께 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오늘 밤 신부님의 시 한편이 생각납니다.

 

 

두메꽃

 

외딸고 높은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산중에

값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만 내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서 숨어서 피고 싶어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런 벽돌 한 장 같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래도 지탱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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