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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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2병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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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1-12-06 ㅣ No.27245

 어느 성당이나 그렇듯이

노인 분들 그중 에서도 할머니들께서는 본당 신부를 무척 아끼시고, 좋아하시고, 위하십니다. 그리고 기도 지향 중에는 늘 본당신부를 위한 기도가 있으십니다.

 

 어제는 정 마리아 할머니께서 레지오를 마치시고 집으로 가시는데, 제가 모셔다 드린다고 말씀 드리니까,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가신다고 하시더니 조금 있다가 신부님께서 태워주신다면 영광이라고 하시면서 저의 차를 타셨습니다. 저는 수녀님과 함께 할머니의 집 방향으로 연도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차안에서 할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시간이 있으면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저는 연도를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연도를 마치고 들리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할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의 집에 전화를 드리고 찾아뵈었더니 잘 익은 감을 잘라 내오시고, 커피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쟁반에는 포크가 2개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좀 전에 드셨다고 하시는데 그럴 리가 없겠죠...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면서 돌아오는데 마음이 참 편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호박, 콩, 배추, 깻잎 같은 것들을 사제관에 놓고 가실 때가 많으십니다. 지난주에는 시제를 지내시기 위해서 만드셨던 뼈 국물을 놓고 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사제관 앞에 놓고 가시는 그 물건들에는 젊은 사제를 사랑하는 포근한 마음이 늘 담겨져 있습니다.

 

 공소에 계신 이 마리아 할머니께서는 박카스를 한 병씩 주십니다.

이제는 치아가 많이 빠지셔서 웃으실 때는 그 모습이 하회탈 같으신 할머니이십니다. 텔레비젼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할머니께서 주시는 박카스를 마시면 피곤이 가시고 힘이 더욱 나는 느낌입니다. 박카스 한 병에 피곤을 가시게 하는 많은 영양소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박카스에 전해진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저에게 힘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공소엘 갔습니다.

그날은 제가 조금은 피곤해 보였나 봅니다. 할머니께서 박카스 한 병을 주시더니 왼쪽 주머니에서 한 병을 더 꺼내 주셨습니다.

박카스 한 병은 마시고 한 병은 책상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아! 내가 드리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것이 정말 많구나!!

 

 할머니들께는 전례력에 따른 대림시기가 그리 특별한 의미를 지니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늘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는 신앙생활이시기 때문이니까요.

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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