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자유게시판

주교가 주교답지 않으면 주교도 아니지...

스크랩 인쇄

이은봉 [eblee] 쪽지 캡슐

2012-08-12 ㅣ No.190113

주교가 주교답지 않으면 주교도 아니지
 
나는 이미 고인이 되신 한 환속한 신부를 알고 있다. 그분은 정열적으로 활동하셨고 철학과 신학 외국어 등 다방면에 걸쳐 실력도 갖춘 분이셨다. 어느 날 갑자기 환속하여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분이 늘 궁금했지만 그분이 사시던 세계와 나의 세속 생활이 너무도 달라 마음으로만 의문을 품었지 달리 나의 궁금증을 풀어줄 길이 없어 그냥 나의 일에만 파묻혀 살았다.
 
그분은 한국 사회에서 알만 한 사람은 알만큼 이름도 알려진 분이라 자신의 환속이 혹시 한국 가톨릭에 스캔들이 되고 누를 끼치게 되지나 않을까 생각하여 외국으로 무작정 날아가 사신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분의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고생을 글로 풀어쓰기에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신부가 배운 것은 신학과 성경 등이어서 일단 세속에 나오면 그런 지식들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나이는 이미 50이 넘어섰고, 새로운 길을 찾기에는 너무 늙어버렸다. 한국 가톨릭교회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환속한 신부들에 대해서는 너무도 냉정하지 않은가 한다.
 
환속하면 우선 먹고사는 일, 호구지책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환속한 신부가 매우 한심한 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저 착하게만 살았지 세상물정을 너무도 몰라서 나이는 먹었지만 사실상 어린 아이가 사회라는 무서운 정글 속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이분 외에도 나는 환속 신부를 몇 분 더 알고 있어서, 그중 어떤 분에게 친구가 되고 내 힘이 닿는 대로 조금 도움을 주려고도 했었다.)
 
대개 환속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하고 큰 이유는 막상 사제의 길을 결심하고 그 길로 들어가 보았지만 거기서 살아보면서 이것이 나의 길이 아니다싶어 세상에 나오는 것, 또 다른 이유는 그 신부들의 세계에서 빚어진 교회 내 갈등으로 인한 것인 듯하다. 전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환속하는 경우일 것이므로 충분히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문제는 나이 드신 신부가 교회 내 갈등으로 인해 환속하는 것이다.
 
나 같은 평신도가 교회 내 갈등인들 어찌 세세히 알 수 있겠는가? 또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번 신부는 영원한 신부인 듯하다. 환속신부는 인간적으로 다른 모든 것은 교류하면서도 교회와 관련된 어떤 것, 가톨릭에 누가 될 만한 어떤 것, 나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될 만한 어떤 것은 절대로 입을 열지 않고 나와 말을 섞지 않는다. 물론 연배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한참 나이가 아래인 나에게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그런데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다. 이 환속신부와 거의 동년배인 주교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이 신부의 활동 보고를 교황대사관에 보내면서 매번 매우 좋지 않게 쓰곤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활동에 제약이 따랐던 모양이다. 이 정도만 말하겠다. 더 자세한 것은 알지도 못하지만 내 상상을 추가할 가능성도 있어 이 정도로 말을 줄이겠다.
 
지금은 그 환속신부에게 계속 좋지 못한 동향보고를 보냈던 주교도 죽고 환속신부도 죽었다. 두 분이 모두 하느님 앞에 간 것이다. 나는 주교가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환속 신부가 어떻게 마지막 생을 마쳤는지는 그 가족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 그분은 끝까지 가톨릭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마지막에 신부가 영해주는 종부성사를 마친 후에 평안한 얼굴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기왕 주교가 주교다워야 주교라는 당돌한 제목을 붙였으니, 현실로 와서 몇 마디만 더 하겠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만들어진 데는, 그 역사적 연유가 있었다는 것은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어떤 특정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여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의 사회참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수십 년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는 민주화 과정에서 사제단이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유신헌법 선포에 대한 정면충돌을 비롯하여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518광주 민주화 과정에서 군사정권이 날조하던 언론 왜곡을 뚫고 전 세계에 진상을 정확히 알리는 일 등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사제들로부터 한국인들은 목마르던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때로 너무 앞서가는, 혈기왕성한 젊은 사제들의 집단행동을 말리려고도 했던 것으로 안다. 그것은 자식이 나가 다칠 것을 걱정하는 어버이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 같은 평신도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젊은 사제들 본인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주교와 사제의 관계는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런 것을 전제했을 때 교회의 순명의 정신도 나오는 것이 아닐까? 젊은 사제들의 집단행동이 설사 과격하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감싸 안는 마음이 어버이 마음이 아닐까?
 
더군다나 지금은, 수십 년 세월이 흘러 나이 지긋한 원로 사제들도 참여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이, 군사정권 이후 침묵하던 그분들이 다시 나서게 된 역사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지성과 능력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과 언론이 살아있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나라라면 뭣 때문에 신부들이 거리로 나서겠는가?
 
주교가 되고 추기경이 된다고 해서 덮어놓고 주교이고 추기경인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포용하는 어버이 같은 마음이 없다면 그게 무슨 주교이고 추기경이고 어른인가? 집에 찾아온 자식에게 물을 뿌려 내쫓는 주교가 무슨 주교인가? 세상의 부모도 그런 부모는 없다. 설사 자식이 아무리 잘못을 했더라도 문전에서 물을 뿌려 내쫓는 부모는 없다. 이렇게 행동하고도 어른에게 순명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가?
 
돌이켜 보면, 지금의 명동은 사제단보다 더 정치적이고 편향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런 막말도 하고 싶어진다. 성체 훼손사건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같이 별 볼일 없는 평신도도 이번 성체 훼손 사건을 보고 너무도 마음이 아파 똑같은 기도를 되풀이하면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도록 빌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고, 교회가 올바른 길에 들어서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3,981 8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