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자유게시판

성당 건물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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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직 [juila12kr] 쪽지 캡슐

2000-10-18 ㅣ No.14630

 나는 모두가 돌아가 버린 뒤의 텅 빈 성당의 고즈녁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크고 웅장한 건물,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하게 꾸며놓은 등나무 아래의 벤치, 성모님의 작은 동산,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이 모든 것이 온통 나 혼자만의 차지가 되어 음미하고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한 잔의 커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이지요.

 

 그 날도 등나무 아래 앉아서 혼자 그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데 형제님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성당 마당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그 분은 성모님 앞에 와서 기도하시고는 성당 건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시더니 내가 있는 등나무 아래로 오셔서 "성당이 참 크고 좋으네요"하셨습니다.

 나는 괜히 이 성당이 내 것이라도 되는 것인양 우쭐해져서 "그럼요, 참 좋죠. 그런데 처음이세요?"   "아니요, 어저께 한 번 왔었어요"

 

 형제님 말씀인즉 자신은 강원도에 사시는데 형님댁에 방문했다가 마침 근처에 성당이 있어서 들어와 보았다고 합니다.

 형님댁은 교우가 아니고 자기만 교우인데 자기도 교우가 된 지는 얼마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성전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데 전부 계단으로 되어 있어 아쉽다고 하셨습니다.

 어제 주일날은 아파트인 형님댁에서 성당까지는 큰 불편없이 왔는데 정작 성당 마당에서 성전까지 들어갈 수 없어 미사 참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그랬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 형제님은 아무리 교우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기가 미안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그냥 구경온 줄 알았는지 아무도 아는 척을 않고 묻지도 않더랍니다. 이쯤되면 우리의 무관심은 가히 수준급 아닐까요?

 그 형제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우리 성당의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래, 정말 그렇구나. 성당 마당 입구는 도로와 거의 수평이라서 휠체어가 쉽게 올라올 수 있었지만 막상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너무 많고 높구나. 모든 것이 우리 위주로 지어졌구나.  불편하고 힘든 이웃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구나. 이 크고 멋있는 성당이 정말은 보잘 것없고 하나도 안 멋있는 성당이었구나"

 

 근래 몇년 사이에 분당하거나 또는 기존의 성당 건물이 너무 협소하다던가 이런 저런 이유로 새 성전 건립이 많아졌습니다. 한결같이 웅장하고 다양하게 짓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을 위한 시설에는 어느 정도 배려를 하고 있는지요?

 지금 휠체어를 탔다고 가정하고 자신들이 다니는 본당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사무실, 화장실, 성전, 교리실, 주차장, 성체조배실.....등등.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과연 몇 군데나 되는지요?  더구나 시각장애인이라면 난간을 잡고 올라갈 수 있는 점자 표시는 더욱 찿아보기 힘들지 않은가요?

 

 적어도 종교 건물만이라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100%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기본은 사랑이고 사랑은 곧 이웃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웃이 불편하고 힘들다면 더욱 그러하지요. 설령 그 시설이 1년에 한 번, 아니 10년에

한 번 사용되어진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성탄절날 예수님이 당신 생일을 어떻게 기념하는지 궁금해서 구경오셨답니다. 온 거리마다 캐롤이 넘치고 기쁨의 축제 분위기여서 흐뭇해진 예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과 빵을 함께 나눌 요량으로 교회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문밖에서 예수님은 쫓겨 나셨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남루하여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이 교회 저 교회 들어갔지만 같은 이유로 모든 교회에서 쫓겨나신  예수님은 결국 교회가 아닌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움막으로 찾아 가시고 교회안에서는 구세주 오심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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