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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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kmike] 쪽지 캡슐

2001-09-13 ㅣ No.24276

샬롬.

참으로 마음이 아픈 이 때입니다.  미국에 거주하시는 아는 신부님으로 부터 멜을 한통 받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우선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답니다. 어려움속에 있을 이들을 기억하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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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진정으로 우리들에게 지금 꼭 필요한 그분의 은총입니다.

신문이나 티비를 통해서 보시고 잘 아시겠습니다만 지금 미국은 많은 혼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티뷔는 물론 라디오도 어제 부터 오늘 까지 정규

방송은 거의 중단한 상태이고 뉴스와 애도에 찬 음악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미사를 봉헌하면서,

또 식사를 하면서 함께 사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여러분에게 글을 전합니다.

물론 저야 아무런 탈 없이 잘 있습니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라고 일컽는 World Trade Center에 떨어진 비행기로

인해서 빌딩이 무너질 때 어떤 운 좋은 사람 하나는 죽을 힘을 다 해서

밑으로 뛰어 내려갔답니다. 거의 한시간 동안을 뛰어서 살기 위해 밑으로,

밑으로 뛰어 갔다는 군요. 그 사람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뛰어 내려 가는

동안 그가 목격한 것은 많은 소방대원들은 오히려 위로, 위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뛰어 올라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완전 무장한

소방대원들이라 할지라도 무서운 유독 가스와 산소 부족으로 계단에서 쓰러질

수 밖에 없었겠지요. 많은 동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무수한

소방대원들을 그저 위로, 위로만 뛰어 올라가더란 것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를 들어보니, 200명의 소방대원들과 100명의 경찰이

행방불명이랍니다. 짐작컨대, 모두 순직한 것이겠지요.

 

오늘 아침 묵상을 준비 하면서,

오늘의 복음을 읽었는데 가슴에 뭉클 와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행복하여라...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지금 행복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님의 불행 선언과 행복

선언이지요.

 

우리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어이 없는 죽음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 죽은 소방대원들은 참으로 불행한 죽음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그 소방대원들의 죽음이 행복하다거나 기쁜 죽음이라고 말할

자신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의 가슴을 저미게 한것은 죽음을 향해 위로

위로 정신 없이 뛰어 올라가던 그들의 순교 정신입니다.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더 큰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케 하는

행위였지요.

 

적어도 그들의 행위는 저에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하고

반성케 하는 사랑의 행위 였습니다. 죽음을 불사한 그들의 행위는 저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줍니다. 아니 저를 많이 부끄럽게 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아래로도 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을 위해서 위로 뛸 생각 조차 하지

못했던 아니, 깨어있지 못했던 순간들의 부끄러움들이 서러움처럼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내 자신의 만족이나 기쁨을 찾아 다니며 그렇지 못한

부분에 늘 불만스러워 했던 쪼그라진 제 모습에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대우 받으려 하고 또 거들먹 거렸던 순간들의 편해진

생활에서 이제는 회개해야 한다는 그들의 절규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매 미사때 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듣습니다.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피의 잔을 들때 마다

예수님께서 우리게 요구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행방불명되신

소방대원들과 경찰들은 우리게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케 하는 분들입니다.

아니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고난의 사도들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모범을 따라 우리의 욕심을 버려야 할 때입니다. 아니

구체적으로 신비적 죽음을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신비를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어제의 모든 폭력 행위들은 누가 이기고 진 전쟁 놀음이 아니였습니다. 그저

우리 모든 인간들이 저질러 놓은 죄의 영향이 아니였나싶습니다. 물론 내가

비행기를 납치해서 그 빌딩에 떨어트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모든 욕심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몸부림에서 오는 죄의 영향이 분명하다 싶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기도하면서 내 자신을

하느님께도 돌이켜야 할 바로 그 회개의 때인 것 같습니다. 다행이 나는

다치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으며,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이 사건과는 관련

없다고 안도의 숨을 쉬며, 불구경 하듯, 싸움 구경하듯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바라봐서는 않될 듯 싶습니다. 슬픔중에 있는 이웃들과 함께 하고

우리가 저질로 놓은 죄의 영향에 함께 분노하며, 우리 모두가 회개 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어제 밤, 어떤 무리들은 삼페인을 터트리며 자축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행복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응징이

아닌 슬픔의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사랑하시고 계실

테니 말입니다. 늘 우리나라 만세 하며 우리나라 좋은 나라 너희 나라 나쁜

나라하며 흑백의 논리로 세뇌 되어온 문화 안에서 내편과 네편으로 갈라서는

그것이 하느님의나라는 정녕 아닐테니까요.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우리는 정말 누구입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믿고 사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우리가 짓고 있는 미소가 행복한 미소인지 아니면 행복을 가장한

억지 미소인지 따져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남을 위해서 위로, 위로 뛰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자신을 위해서 아래로, 아래로는 뛰어보셨습니까?

위로는 뛰지 못한다고 해도 아래로라도 뛰어야 할 우리의 처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참 행복과 불행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어

이렇게 두서 없이 글을 띠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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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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