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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금호동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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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수 [gkswjdtn] 쪽지 캡슐

2001-12-04 ㅣ No.27087

  찬미 예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금호동 성당에 보좌신부로 있는 한 정수(베드로)신부입니다. 먼저 많은 신자분들과 선배 신부님들께 그리고 어머니이신 거룩한 성교회에 커다란 상처를 주어 참으로 머리 숙여 용서를 청합니다.

 

 저는 이곳 금호동성당에 지난 19일에 부임하여 오늘까지 보좌신부로 사목에 임하고 있고, 주임 신부님께서는 36일에 이곳에 오셔서 현재까지 사목을 하고 계십니다.

 저희 금호동성당은 5,000여 신자분들에 1,600여 세대의 본당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 금호동에 와서 신자분과 함께 하며 사제로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하느님의 커다란 은총인가 가슴 깊이 체험합니다.

 

 저희 신자분들은 경제적으로 그리 부유한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 금호동은 참으로 된장 뚝배기의 맛이 절로 느껴지는 소박하고 인정 많은 따뜻한 곳입니다. 신자분들의 연령층 또한 청,장년층 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한 사제는 신자분들의 사랑과 기도로 더욱 예수님께 나아가게 되고 성화되어진다는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아직 모두가 잠자리에 있을 시간에, 찬 밤공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때에 성전에 꿇어 앉아 기도로서 또 하루의 새벽을 여시고 새로운 하루를 하느님께 봉헌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그 모습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고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아직 버스 기사가 잠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벌써 모든 청소와 차안 점검을 다 하시고 몸으로 함께 차안을 따뜻하게 데워 놓습니다. 제가 먼저 올라 차에 시동걸고 난방장치를 켜고 어서 오시라고 문을 열어주며 인사해야 하는 것이 순서인데, 번번히 반대로 신세를 집니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따르더라도 한 사제는 흩어지는 양들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라는 한 우리 안에 모으는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금호동 성당에 작은 고통과 진통을 바라보며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사제로서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마음 아프고 슬픈 일입니다. 찹찹한 마음에 그저 예수님께 메달려 봅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첫 부임지가 이곳 금호동이고 또 기쁘게 하루하루를 신자분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오다가 갑자기 마주하는 고통과 어려움이라 당황스럽고 그저 제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고백합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이고 호기다'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교회가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평신도와 함께 하는 교회로 더욱 한 걸음 성숙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본당이나 사제와 신자분들 간에 작은 갈등과 불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어려움이 부쩍 많아졌음을 몸으로 체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서로에 대하여 더 많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데, 피할 수 없는 통로라면 이 또한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한 가정에서 자라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때때로 서로 부딪치고 아파하는 과정을 통하여 주님 안에 더욱 한 몸이 되어 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오늘 금호동 본당 공동체 또한 더 좋은 공동체의 모습으로 주님 안에 치유되고 성숙되어 가리라 확신합니다.

 

 오늘날 사제들이 적지 않게 공개적으로 비난 받는 모습 속에서 제 자신의 모습을 겸손되이 성찰하게 됩니다. 신자분들께 비난을 받을 것은 받고, 책임을 져야할 것을 지고,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판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준과 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도그마(믿을 교리)에 관하여 그렇습니다. 한 종교 지도자가 '세상 종말이 내일이니, 휴거가 오늘이니'하며 다수의 착한 신자분들을 절망과 파멸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만일 한 사제가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등등의 이단의 교리를 설파한다면 이는 교회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아야하며 이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둘째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부분입니다. 사제는 예수님과 복음 위하여 전적인 투신을 약속한 사람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예수님과 신자분들과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 것을 하느님 앞에서 서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제가 여자문제나 자식의 문제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인격적으로 대부분의 신자분들이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할때(심한 욕설이나 주사 등등) , 이에 대하여 비난을 감수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정에 대한 문제입니다. 한 사제가 교회의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착복하고, 크고 작은 이권에 개입하여 사유재산축적을 일삼을때, 이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아야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 가정에서도 아버지의 행동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때, 가령 아버지의 심한 구타나 욕설등으로 가정의 존립기반에 심각한 위협을 받으면 가족들은 가정을 살리기 위하여 이웃의 도움이나 경찰의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고, 또 그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작은 실수나 잘못을 범했다하여 가족이 아버지의 흠집과 약점을 동네를 돌아다니며 공개적으로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습니다.

 

 정의는 사랑에 기초합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란 잔인한 칼에 불과합니다. 신자분들은 저희 사제들을 신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라 부릅니다.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신자분들의 사랑을 느낍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느낄수 없는 우리 신자분들의 사랑이라고 감히 자신있게 말합니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신자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신부님들, 다시한번 머리 숙여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39년동안 금호동 공동체를 이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 저의 사제들과 신자분들에게 전해주신 전임 신부님들과 신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짐합니다. 저희 모두도 이번 일을 통하여 더욱 주님 안에 하나되어 귀하고 소중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다음 분들에게 전해주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 그리고 이 척박한 조선땅에 그리스도 교회를 열어주신 신앙선조들, 신자분들을 기억합니다.  두서없는 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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