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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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신부님? 나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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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skwdmsdl] 쪽지 캡슐

2001-12-09 ㅣ No.27328

1991년으로 기억합니다(90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친한 제 친구가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제 친구도...

어려움이 무엇인지, 고단함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자라난 세대인지라, 그 또래의

여느 사람들처럼 학업과 이성문제........등등의 흔한 일상사를 세상에 둘도 없는 짐으로 여기며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 친구 녀석이 아침에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당연히 학원에 가 있어야 할 시간에 저를 찾아온 친구가 하는 말,

"나 그냥 좀 쉬어야겠다. 아무것도 묻지마 임마,할말도 없어, 그냥 좀 있다 갈께..."

 

힘들어 하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날 본 친구의 얼굴은 ’그냥 이러다 괜찮아 지겠지...’라고 생각하기엔...유난히 무거워 보였습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애를 써 봤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낮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솔직히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날 저녁에는 그 친구와 술을 먹었었고(사실은 그 친구 혼자서 거의 다 먹었습니다) 많은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술을 먹는 중에.. 이 친구가 느끼고 있는 중압감이 예상밖으로 심각한 것이었고, ’내 선에서 해결하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때 시간이 저녁 12시였습니다..

평소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르는 성격이었던 저는 저희 본당의 보좌신부님께 무작정 전화를 했습니다..

제 친구 좀 도와주십사...말이죠...

그리고 사제관으로 친구와 같이 갔습니다.

(제가 그 분을 잘알고 있었냐...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이후론 교리반도 나가지 않았었고 전례부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그냥 미사만 왔다갔다...하는 그런 저를 보좌신부님께서 잘 알리가 없었죠)

 

 

그런데 그 늦은 시간에.. 그 신부님께서는 저희를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제 친구에게 , 또 저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아주 진지하게 해 주셨습니다.느닷없이 한 밤에 전화하고 찾아온 결례에 대해서는  한마디

꾸중도 없이... 말이죠...

 

그렇게 1시간이 넘게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시고..또 가르쳐 주시고 마지막에는

저희 둘의 손을 꼭 붙잡고 기도도 해 주셨습니다..

 

(그 날 신부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중에는 지금도 제 가슴속에 남아 있는 말씀도 있습니다.

" 진정한 남자다움? 똥배짱부리는 것도, 객기부리는 것도 남자다움으로 봐줄수 있겠지만

말이다... 진짜 강하다는것... 정말 남자답다는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감싸주고 그이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용서해 줄수 있는게 아니겠니?"라는 말씀말이져...)

 

사제관을 나서면서  ’늦은 시간에 죄송했다’는 저희의 인사말에 아주 태연한 모습으로 "이게 내가 해야 될 일인데 뭐...언제든 괜찮으니까 힘들면 또 와!" 라고 하시던 신부님.....

 

 

그 후, 제가 다른 보좌신부님의 성서공부반에 잠깐 나갈 때, 잠시 잠깐 지나치며 뵐때도 반갑게 맞아주시던 신부님...

 

 

그런 신부님이 계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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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곳에 오지 않다가 며칠전에 다시 게시판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금호동 얘기를 처음 보게 되었고요..

금호동 얘기를 볼때의 제 모습은.. 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병적인 흥분상태’

그 자체였습니다.

 

’아니, 아니 어떻게 신부가 이럴수가.. 이게 정말이란 말인가!!!

이 사람이 정말 신부란 말인가?? 정말 실망스런 신부들도 적지 않아..’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제가 섭섭함을 느꼈던 몇 분의 신부님의 얼굴을 떠올렸죠..

 

신부님들을 비난하는 논조의 형제들의 글을 읽으면서.. 알수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기분이 마냥 좋았답니다.. 털끝만큼의 미안함도 없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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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개를 올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김기현이고 본명은 라파엘입니다. 지금 31살 입니다.

응암동에서 유아세레를 받았고, 초등학교때부터 역촌동 성당에 다녔습니다.

95년부터 지금까지는 문정동 성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보좌신부님은 91(90년?)년 당시 역촌동의 보좌로 계셨었고, 지금은

금호동의 본당신부님으로 계시는 이 상헌 요셉 신부님이십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신나게 비난했던 신부님이 바로 제 기억속에 성자처럼 자리잡고

계시는 그 신부님이란걸 어제서야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분이란 걸 알고나서 제가 어찌했는지 아십니까??

 

다시 한번 금호동과 관련된 모든 글들을 샅샅이 훑으면서 이번에는 마음속으로

그 글을 올리신 형제님을 아주 격렬하게 비난했답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농담도 못받아 들이나?? 글씨는 왜 자꾸 확대하는거야?

유치해서 못보겠네 이거..천주교 신부란 직업은...정말 힘든직업이야...’라고 중얼거렸답니다..(글올리신 형제님께는 죄송함돠.. 형제님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라

제 감정의 흐름을 표현하려다 보니 일케 됐습니다.. 화내지 마세용~)

 

 

좋은 신부님... 나쁜 신부님...

 

지금 보니까 말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말이져...

좋은 신부님.. 나쁜 신부님이 따로 없었네요...

 

내게 잘해주면... 좋은 신부님...그 분이 하시는 일이라면..어느 정도의 편법이나 독단도 용인되어야 하는..그 정도로 내게는 좋은 신부님,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신부님이어야만 하는 그런 신부님이었고..

 

’내 불쾌한 기억’을 자극하는 글 속에 등장하는 신부님은 나쁜 신부님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구석이 조금도 남아 있을것 같지 않은... 그렇게 나쁜 신부님이었습니다..

 

이게...

저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거란 느낌이 든다면.. 제가 너무 비겁한 걸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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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향한 여정중에 계시는 신부님들께서도......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도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많은 시행착오를 거치시고... 비틀비틀...그렇게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가 분명히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만나는 신부님들의 모습은 하느님을 향한 그 분들의 긴 여정중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만났을 때 신부님의 모습이 비틀거리는 모습이었다고 해서, 과거의

그 분의 모습이,혹 미래의 그 분의 모습이 내가 본 모습과 같으리라 단정지을수는 없지

않을까요??

 

마치 ’지금’,’내가’ 뜯어 고치지 않으면 도무지 가망이 없는 무엇을 다루듯,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걸음 쉬시면서.. 위에서 본 저와 같은 간사함이 여러분들에게는 없는지도...

한번쯤은 살펴 보고 갔으면 합니다......

 

(시건방진 소리였담 죄송함돠.. 연세 많으신 분들도 이 곳에 자주 오신다기에 이 글을

올리기가 무지하게 조심스럽뚬돠...그냥 가볍게 읽고 넘어가 주세영~ 답글 사양함돠!!

모두 모두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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