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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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관 [gabie] 쪽지 캡슐

2003-04-19 ㅣ No.51235

성목요일의 ‘주님만찬미사’ 중에 세족례를 하면서 교우들께서 스스로 자기 발을 씻어달라고 하면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본당의 사목위원들이라든가 대표 급 신자들 등으로 미리 선발한 인물들을 특별한 좌석에 대기시켰다가 발을 씻어드리면 그야말로 ‘형식’ 그 자체인 것 같아서 저는 신자 석에 다가가서 아무나 닥치는 대로 발을 씻어드리곤 하는 것이 매년 성목요일 미사에 저지르는 저의 습관적(?) 이벤트입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분들은 스스로 양말을 벗고 기다렸다는 듯이 저에게 발을 쑥 내미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면 저는 아주 묘하게 기분이 좋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젊은 여성 교우의 발을 씻어드릴 때도 있는데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젊은 여성 교우의 발을 만질 때 혹여 제 마음이 엉큼해지는 것은 아닐까 해서 저 스스로도 망설일 때도 있고 또는 다른 분들이 제가 젊은 여성의 발을 어루만지는 것을 불순하게 여기지 않을까 해서 쑥스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여성의 발을 언제 만져보나 해서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엉큼한(?) 심보이지요. 허지만 신자 분들 보시기에 차별 없이 매우 공정하게 발을 씻어드린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노인이나 어린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비교적 통로 가까이 앉아계신 신자 분들에게 “발 씻어드려도 되겠습니까?”하고 질문부터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젊은 여성 교우에게도 다가가서 “발 씻어드려도 되겠습니까?”하고 질문하는 것이 별로 의심(?)받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저의 질문을 받는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께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발을 의자 밑으로 감추는 분들도 계십니다.

헌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아주 흔쾌히 양말을 벗느라고 기쁜 얼굴로 서두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혹 제가 스쳐 지나가면 “신부님! 저요! 저...” 하고 저를 부르면서 미리 양말을 벗고 기다렸던 발을 불쑥 내미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면 주변 좌석에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런 때에 제가 짓궂게도 “거 웃으신 분들 발을 내미세요!”하고 그런 분들이 양말을 벗을 때까지 버티고 기다릴 때도 있는데, 나중에 그 강제로 발을 씻긴 분들이 미사 후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발을 씻어드리다 보면 좌석 가운데 끼어 계시던 할머니께서 저를 부르시면서 발을 씻어달라고 사뭇 간절하게 애원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곤 몸 아픈 데가 많은데 신부님께서 발을 씻어주셔서 이제는 나을 것 같다고 즐거워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는 자기 자녀 어린이를 데리고 제단에까지 쫓아 나와서 발을 씻어 달라고 부탁하시는 엄마도 계십니다. 어린이가 싫다고 몸을 뒤틀어대는데도 강제로 그렇게 시키는 엄마도 계십니다. 그러면서 “얘 앞으로 신부님 되라고 기도해주세요.”하고 후속 부탁까지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렇게 발을 씻어 드리다 보면 실제로 정말 만지기가 께름해지는 발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의 발은 정말 냄새가 고약하게 나기도 하고, 무좀으로 진물이 나는 발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타월을 여러 장 가지고 다니면서 그런 무좀 발의 경우에는 제 손으로 직접 만지지 않고 타월로 감싸 안아서 문질러 드립니다. 그 까닭은 혹 저의 손으로 다른 분들의 발에 무좀을 옮겨드리지 않을까 해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발을 씻어드리며 가끔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허름한 옷을 입으신 분이나 매우 어렵게 사시는 듯한 분들의 발을 씻어드릴 때는 “내 발은 이분의 발보다 고생하지 않은 발이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의 가난하신 모습이나 고생스런 모습 때문에 그런 생각으로 저의 고생스럽지 않은 생활에 대한 은근한 자격지심이 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상 모든 신자 분들의 발은 저의 발보다 고생스런 발들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 장애인의 발을 씻어드릴 때에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의 발은 더욱 그런 생각을 저에게 안겨줍니다.

매년 성목요일의 세족례 때 그런 생각을 합니다만, 어제의 성목요일 주님만찬미사에서 세족례를 하면서는 더욱 신자 분들의 발보다 저의 발이 확실히 고생을 하지 않은 발이라는 그 자격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 우리 본당은 신자 분들 거의 전원이 노년층인데다가 이즈음 고추 모종으로 매일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어제의 주님만찬미사에 나오셨지요. 총 29명이 나오셨습니다. 헌데 어제의 그 29명 참석 신자 분들 가운데 외교인 할머니 한 분도 계셨습니다. 먼데 사시는 할머니였는데 외지 도시에 나가 사는 아들이 천주교 신자 되어 와서 어제 자기의 어머니를 모시고 나온 것입니다. 아직 신자 아니신 어머니를 특별히 모시고 나온 것이었지요. 그 아들이 저를 부르면서 자기 어머니는 아직 신자 아니시지만 발을 씻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발을 제가 흔쾌히 씻어드리면서 더욱 저의 발은 고생해보지 않은 발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께서 나중에 신자 되시건 아니건 간에 모처럼 제가 좋은 일 한번 했다는 기쁜 마음이 되어서 어제는 정말 좋은 성목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한 할아버지의 발을 씻어드리면서 그분 다치신 발에 덕지덕지 발라놓은 약을 손으로 만지면서는 “이 할아버지 늙으신 삭신으로 이렇게 고생하시는데...”하는 생각으로 “이분의 발을 빨리 낫게 해주십시오.”하는 기도를 마음속에서 바쳤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어제의 그 세족례에서 참석하신 모든 신자 분들의 발을 모두 씻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이래야 고작 29명이었으니 더욱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헌데 여덟 분의 발을 씻어드리고 계속 다른 분들에게 다가가며 “발 씻어드려도 되겠습니까?”하고 질문을 하는데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서너 분에게서 그렇게 거절 당하고보니 나머지 모든 분들에게도 그렇게 질문하기가 계면쩍어서 그만 여덟 분으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여기 시골의 신자 분들께서는 그렇게 쑥스러워하십니다. 전에 도시 지역의 성당에서는 세족례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서 중간에 사목위원들이나 전례 안내원들께서 제지하시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기서의 어제는 세족례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허지만 미사 후 우리 신자 분들의 공동체실 비닐하우스에서 이 봄의 햇쑥으로 만든 떡을 나누면서 진짜 아가페 시간이 되었지요. 그 덕분에 남자 교우 분들 가운데는 소주로 얼근해진 얼굴이 되어 성체조배실로 들어가신 분들도 계시지만요...!

그리고 우리 성당의 성체조배실 창고와 성당의 문단속을 하느라고 밤을 새우면서 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10년 전에 서울 신학교에서 특강을 하셨다는 H. Graham 수녀님의 말씀을 강론집 책에서 읽고서 저의 가슴에 찔린 생각으로 그렇게 성목요일 밤을 지냈습니다. 그 수녀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답니다. “사제들은 자신을 봉사자라 자칭하면도 1년 내내 364일 23시간 55분 동안 신자들 위에 군림하고 명령을 한다. 그리고 그 1년 중 나머지 단 5분간만 봉사한다. 성목요일 저녁미사의 세족례 때 신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고작 그 5분간 정도의 봉사를 하면서 봉사자라 자칭하는 사제들이니 이건 너무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군요! 1년은 525,600분이나 되는데, 그 중에서 고작 5분 동안만 봉사하는 게 저입니다! 저의 봉사 시간은 1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그 0.00095% 밖에 되지 않는군요! 그걸 1%로 끌어 올리는데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으로 보낸 성목요일 밤이었습니다.

그 1%이라야 고작 3일하고 반나절 밖에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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