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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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아버지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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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4-02-13 ㅣ No.61571

 

 나는 2남 1녀중 차남이다.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는 형을 먼저 보았고, 그후 나를 안게 되었다.

 

이미 형으로 인해 아들이란 당신의 분신을 안아본 터라 아무래도 조금은 그 기쁨과 설렘이 형때보단 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차남으로서 당연한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의 입이 귀까지 걸렸었다란 말이 있으니 아버지도 나를 얻고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것은 틀림없었던것 같다.

 

아버지의 세대는 참으로 불행한 세대임엔 틀림없었다.

 

전쟁을 거치고 뭐 찢어지도록 가난한 시대에 가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밤으로 낮으로 우리들을 위해 동분서주 하셨을 그분에게 나는 희망이자 삶의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인생을 가르치기 위해, 험난한 세상속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때로는 매도 드셨고 때로는 사탕으로 달래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자라서 나는 성인이 되었다.

 

나는 나혼자 잘나서 자랐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내인생은 나의것!이라며 혼자 천방지축 날뛰고 다녔었나 보다.

 

손만 내밀면 아버지의 지갑은 마르지 않는 요술 지갑마냥 당연히 나에게 쑥쑥 용돈이 나오는 것이라 여기며 아버지의 피같은 돈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써댔다.

 

여자친구도 만나서 아버지의 돈으로 환심사기 바빴던 시절도 있었을테고 친구들과 코 삐뚤어지게 겁 모르게 술 퍼먹곤 밤새 오바이트 꽥꽥 해대던 시절...그때도 내가 쓴돈은 내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피였다.

 

운전면허증을 따고는 운전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하던 초보시절, 아버지의 자가용은 당연히 내차지였다.

 

아버지 바쁜일 있어 오늘 써야한다는것도 알지만 자동차키 몰래 빼내어 "아싸~운전은 이맛이야!"하며 아버지 써야한다는것 까맣게 잊고 달리고...주차하다 옆에 차 부욱 그어 앞머리 찌그러져도 나는 내가 고쳐놓은 일이 없었다.

 

고쳐놓는 것은 커녕 기름 한방울 내가 채워 놓은 일도 없었다.

 

그래도 무사히 다치지 않은것에 안도의 한숨 내쉬는 존재는 아버지이다.

 

군에 입대한다며 집을 나설때 어머니는 안쓰러워 눈물 지으셨지만 아버지는 잘다녀오란 말 한마디뿐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고생하러 군에 가는데 하나도 슬프지 않은가 보다며 젠장~!이라고 여긴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어렵던 시절 배고픔에 절어 군생활을 보내셨던 그분이 모를리가 없었다.

 

어머니 보다도 더 군을 잘 알고 계신 아버지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내가 어찌 헤아렸을까?

 

아버지에게 있어 아들이란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어쩌면 아들이란 아버지에게 있어 영원히 철들지 않는 불효자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아직도 철이들든 내가 이제 아버지가 되었다.

 

지난 2월 7일 주님의 은총속에 3.2Kg의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

 

"어? 난 아직 아버지로서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난 그저 아들이란 타이틀만 고수하며 철없이 세상 살고 있는데???"

 

그렇게 준비할 새도 없이 나를 닮은 조그마한 핏덩이가 병원에서 나와 첫대면하며 "내가 바로 당신의 아들이오! 이제 당신이 당할 차례인가 보오!"하며 울어 재끼고 있었다.

 

나는 그날 핏덩이 아들과 그녀석을 입이 함지박만하게 열리신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아버지 사이에 서 있었다.

 

나의 아버지 한번, 내 아들 한번 쳐다보며 말이다.

 

그 사이에 내가 서 있었다.

 

한남자의 아들로서, 또 한남자의 아버지로서 말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실감이 나진 않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아내옆에 수발이 되어주고 오늘 드디어 퇴원을 해서 아들을 안고 왔다.

 

첫날보다 녀석은 훨씬 이뻐져 있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궁금해서란다.

 

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으면서 내 아들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때도 또 난 그렇게 그 사이에 서 있었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아버지란 타이틀을 얻었다라는 것이 뭔 소린지도 잘 모르겠다.

 

난 영원히 그분의 아들로서만 남아 있을줄 알았는데 말이다.

 

이제 나도 조그만 핏덩이 녀석에게 인생도 가르쳐야하고 험난한 세상 헤쳐나가는 방법도 가르쳐야 한다.

 

(참! 훗날 자동차키도 꼭꼭 숨겨 놓아야 한다.*^^*)

 

난 아들을 얻음으로써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아울러 산모와 아기를 건강히 지켜주신 주님께도 꼭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아직은 실감안나는 초보 아버지란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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