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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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천주교의 장점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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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166.*]

2017-06-07 ㅣ No.1150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누구나 미사에 참례할 수 있고 성당문을 나설 수 있습니다. 이를 영육으로 천주님을 모시는 공동체에서 세상으로 파견되는 프로테스탄트교회인으로 비유될 수 있지요. '프로테스'는 '항거하다'의 의미를 갖는데 그리스도 안의 한 핏줄로 소위 기독교인(그리스도인)들로 불려지고 있는 개신교인들도 나의 마음(이성+영혼) 여정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천주교인의 장점은 영육으로 보다 구체적인 "성사생활"을 할 수 있음입니다. 천주교는 천주님의 가르침을 첫 자리로 모시는 제자와 스승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 자체입니다. 그렇게 너와 나는 자주 천주교와 천주교회의 가깝고도 먼 관계 앞에서 섞갈림(물=죽음+피=생명)을 만나지요. 

 

같은 기독교(그리스도교) 외에도 수많은 개신교로 인한 개신교, 심지어 임도 보고 뽕도 따는 무당교들도 보면 부정부패 만연을 볼 수 있겠는데 이때에도 천주교인은 천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들을 바라봅니다. 성사생활의 힘으로 내안의 심장처럼 박동을 멈추지 않으며 때때로 산만한 그것들을 경계하되 동화되지 않으려는 힘을 주시지요. 예로써 사람들은 박수갈채에 연연하게 됩니다. 그리고 박수가 없으면 왠지 적막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 예수님의 입, 성령의 힘으로 무장된 사람은 그 모든이안의 모든 것 다만 참여에 의미를 두는 사랑과 빛과 어둠 섞임 등 식별의 가치 공존 앞에서 평화로이 그것을 바라보고 하느님과 함께 향유하며 갈등을 조정, 극복하며(기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되) 거룩한 그것은 장려하게 됩니다. 박수에 즐거워지고 박수 없음에 고요을 느끼는(동감) 것이지요.

 

도시인들이 한적한 자연 속에서의 삶을 그리듯 너와 나 또한 그렇게 무명순교성지를 미리 순례할 수 있고 또한 온 영육 그 성당 안에 들어가 염치 없지만 그리스도 제대 위에 나를 봉헌할 수 있습니다. 이때의 '봉'은 "받다(공감)", 헌은 "바치다(동의)"의 의미가 따르고 있는데 이는 나의 머리를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가르침으로 비우고 채우는 것으로 사람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 마침내 발현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또한 작은 성체신심이 될 것입니다. 성체신심에 대한 불신이라 함은 일종의 의심 행위지만 그것을 거름화로 거리감 속 시나브로 침묵을 통해 나를 더욱 기쁘게 버리고 전지전능하시며 사랑과 자비 자체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어머니 품에 안겨서 이웃과 그것들을 나눌때 그것들 또한 배가됨을 느끼게 됩니다.

 

신부님, 수녀님들의 일당백, 일당천의 평신자에 대한 거리감은 평신자들의 그것과 다소 다르지요. 그 거리감 속에는 위의 고요 비유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기도가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순간 동시 통역으로 일치화 시켜주는 것은 평신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너에게 나를 보내는 여정에서 눈으로는 때때로 그 기도 과정의 거리감이 차갑고 군림주의 또는 심하면 사이비로도 비추어지는 것으로 간혹 사제와 평신자와의 다툼이 이어지는 것들 또한 풀어주어 가게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때의 거리감은 미사를 보는 것이 아닌 참례하는 것이기에 승자인 무대위로 오를 것이냐 패자인 관색석에 머물것이냐도 떠나서 즉시 능동적으로 그 거리감 속에서 주님께 "저희들의 평화의 안식을 기원합니다."로 청원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수도자가 되는 것이지요.

 

조용히 묵상이 필요하다. 함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함축생애를 담은 묵주기도도 좋고 묵상 자체가 내가 주님과 하나되는 여정이기에 생활속의 준성사 지향, 향유 또한 묵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신앙생활 신부님과 수녀님 보고 다니지 않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보고 듣고 믿게 될 것이고 이에 믿고 듣고 보는 예수님과 하나되어 내가 아닌 예수님의 사랑(관상하라!)을 시나브로 체험(설파하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너와 나는 그 흔한 사랑 아닌 서로 마주보지 않고 한 방향 바라보는 사랑을 하고 있지요.海棠.

 

1. 공감: 너와 나의 느낌이 다르지만 생각이 같다.

2. 동감: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지만 느낌이 같다.

3. 동의: 너와 나의 느낌과 생각이 다르지만 너의 의견에 나를 맞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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