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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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공포스러운 죄, 무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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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민 [yooymin] 쪽지 캡슐

2014-08-28 ㅣ No.207132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얼마전 일간지에 보도된 한 미국신부의 끔찍한 살인이 기억난다.     1980년 본당수녀를 살해하고,20여년이 지난

2006년에 범죄사실이 밝혀져 수감되었다.   수감중 교도소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에 대해 소속 교구장은

사제로서의 장례예식을 치루겠다고 발표했고,여론은 이에대해 부정적이라는 보도였다.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는

모른다.     다만 내게 충격적인 것은 ,범죄가 밝혀진 20여년동안, 그사제는 일상의 사제모습으로, 그리스도신비의

절정인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그 끔찍한 손으로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했으며,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웃음속에

신자들을 지도했다는 것이다.      가증과 뻔뻔함의 극치다.   죄에 무감각한 이사제의 태도는 충격을 넘어 공포다.

그렇다면 비단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죄의 무감각 만이 ,가증과 뻔뻔함의 공포일까?


언제부터인지 일부 한국사제들의 부조리함이 도드라졌다.

사제는 사도들의 후예인 주교들을 도와 "하느님의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봉사자임에도 때론 주교의 방침을

거스르고 독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신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권위적인 태도를 거침없이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사무원을 일용직근로자처럼 어느 한날 해고하고, 사목위원의 결정을 한순간에 뒤엎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신자들에게 고성을 지르고, 담을 쌓고 산다.     소외된 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비천한 신자들을

귀찮아한다.     그래서 일까.     저녁시간에 사제관의 전화벨은 공허할 뿐이다.     친분이 있어 휴대폰번호를

알기 전에는 통화가 불가하다.     그리고 때로 저녁의 사목은 주방의 식복사자매님 몫이라는 생각도 든다.

베풀기보다는 받기를 좋아한다.    때론 노골적이다.

신자들의 정신적양식을 위한 신중한 사색보다는, 룸살롱을 다니며, 자신의 쾌락을 즐기기도 한다.

어쩌다 신분이 노출되면 다른 술집으로 옯겨 끝없이 쾌락을 추구한다.

새로산 물건이 마음에 들지않는다고 구석에 쳐박고, 며칠 후 ,새로이 다른 물건을 구입한다.

도대체 이러한 사제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과 희생과 정의를 말 할 자격이 있는가?

문제는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의미없다는 것이다.

일부 부조리함 속에 사는 사제들은 , 자신들의 부조리함을 느끼지 못하니까 말이다.

무감각.    정말 무서운 공포의 죄안에 갇혀 살고있다는 생각이다.


얼마전 한 사제의 말을 곱씹어 본다.     "우리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처절한 고통뒤에 온 영광을 등에 업고

너무도 편안하게 그저 영광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오늘 또다른 사제의 페이스북의 글.     "우리 성직자들은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우리에게 준 감동들을,

진정 거짓없이 느끼고,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이미 무감각해진 부조리한 삶속의 일부 사제들에게 이런 외침이 들리기는 할런지.

그래도, 참담함속에서 글을 써보는 것은 ,교회의 정의를 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모여, 무감각의 벽을

깨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함이다.

무수히 많은 좋은 사제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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