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관련

가톨릭교회의 보고(寶庫)-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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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엽 [simjy] 쪽지 캡슐

2005-03-18 ㅣ No.525

가톨릭교회의 보고(寶庫)-준성사

상징물 통해 삶이 성화돼

사람은 환경에 영향받기 마련

성상 모셔놓고 신심 북돋워야

 

지금까지 여러 성사에 숨겨있는 보물들을 뒤져봤다. 주제의 균형 있는 안배를 위하여 혼인성사, 성품성사, 병자성사 등은 건너뛰고 가고자 한다. 이제 살펴볼 또 하나의 보물 상자는 준성사(準聖事)이다.

 

달마도와 십자가

 

요즈음 케이블 TV방송에는 「달마도」를 전문적으로 홍보하는 채널이 있다. 체험자들의 증언, 달마도를 그린 작가의 설명, 그리고 호기심을 유도하는 내레이터의 진행으로 구성된 이

프로는 매일 반복 방영되는 것으로 보아 실제적으로 달마도 홍보를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내용을 보면 달마도가 액운을 막아주고,

건강을 지켜주고, 수맥을 차단해 주고, 심지어 사업을 잘되게 해주는 신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식이다.

 

필자는 「그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어도 저들이 믿는 신념이 달마도라는 그림에 에너지 형태로 내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고자 예로 든 것이다.

그렇다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그것이 효험이 있으니 구입할 만 하다」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역시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달마도에는 저들의 신심(信心)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요지는 이렇다. 즉, 신념이나 믿음의 내용은

상징을 통하여 담지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곧 부처상에는 부처의 얼이 서려있고, 달마도에는 달마대사의 정신이 배어있고, 피카소의 그림에는 피카소의 심상이 묻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십자가는 예수님의 정신을, 성모상은 성모님의 은총을, 성화는 각기 그 주인공의 특은을 매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사실, 이런 상징이 지니는 의미를 가장 잘 활용한 것이 가톨릭교회의 칠성사와 준성사이다.

성사를 집전하는 가톨릭 의례는 단지 허례허식이 아닌 것이다. 상징과 믿음의 내용이 합치되어 이루는 기막힌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성상(聖像)과 성화(聖畵)들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공경한다.

이는 우상숭배(偶像崇拜)와 관련이 있으면서 동시에 구분되기도 하는 일이다.

곧 상징물에 담지시키고자 한 내용이 신격화되었느냐 아니냐, 또 어떤 신앙(예컨대, 유일신 신앙이냐, 범신 신앙이냐)이냐에 따라서 우상숭배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보는 대로 믿는다

 

상징물이 실제로 어떤 신념이나 믿음의 내용을 담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물음을 떠나서 상징물과 관련하여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사람은 자주 보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아마 동물에게도 통하는 것 같다. 이를 지혜롭게 이용한 것이 야곱이었다. 야곱은 삼촌 라반과 재산다툼을 하면서 꾀를 부려 무늬 없는 「흰 양」은 삼촌 소유로 하고, 「얼룩 양」은 자신의 소유로 하자고

제안 한 뒤, 양들이 교미를 할 때 「얼룩 무늬」를 보여주어 톡톡한 재미를 보았던 것이다(창세 30, 25~43 참조).

실제로 사람은 보는 것에 의해 영향을 받고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환경을 얘기하는 것이다. 맹모삼천지교, 오늘날 청소년의 영상 문화, 인터넷 문화 등 모두가 이와 관련된 현상들인 것이다.

준성사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이런 예들을

들어봤다. 한 마디로 준성사는 이런 상징물

그리고 보이는 것들을 성화(聖化)하여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보전하기 위해 교회가 신자들에게 베푸는 특혜다.

 

준성사의 은총을 누리자

 

준성사(準聖事)는 교회가 제정한 것이다.

『어머니인 교회는 준성사들을 제정하였다.

준성사는 어느 정도 성사들을 모방하여 특히

영적 효력을 교회의 간청으로 얻고 이를 표시

하는 거룩한 표징들이다.

이를 통하여 사람들은 성사들의 뛰어난 효과를 받도록 준비되고, 생활의 여러 환경이 성화 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67항).

준성사는 칠성사에는 속하지 않지만 성사의

특성을 지니는 거룩한 상징(행위)들을 말한다. 성사는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준성사는 가변적이고 고칠 수 있다.

대표적인 준성사에는 축복, 축성, 구마가 있다.

- 축복(祝福)은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 행복과 은총을 간청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라틴어 Benedictio에서 온 말이다. 축복에는 사람(부부, 어린이, 노인, 순례자 등)의 축복, 건물이나 운송 수단(집, 전답, 차, 비행기 등)의 축복, 가정(개인)용 성물(고상, 성상, 묵주, 성화)의 축복 등이 있다.

- 축성(祝聖)은 물건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성스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라틴어 Consecratio에서 온 말이다.

이 축성에는 제구(성작, 성반, 제대, 감실, 성물)의 축성, 장소(성당, 성지)의 축성, 사람(성직자, 수도자)의 축성 등이 있다.

- 구마(驅魔)는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도 어떤 지향을 정하거나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기도나 행위 또는 존재를 하느님께 드리기로 약속하는 봉헌 의식도 준성사에 포함된다. 이 준성사와 관련하여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아주 유익한 권고를 전해준다.

『레지오 단원들은 교회가 공인한 「성의」(聖衣, 스카플라), 「메달」, 「배지」를 활용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특히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옷인 「갈색 성의(Brown Scapular)」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또한 레지오 단원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가정에 십자가와 성상을 모시고, 벽에는 성구(聖句)와 성화를 걸고, 성수를 준비하고, 기도로써 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축성된 묵주를 마련하라고 권면함으로써 가정의 신심을 북돋우어야 한다. 교회의 준성사를 경시하는 가정은 장차 성사

생활까지 포기하는 위험에 놓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은 외형적으로 신심을 북돋아 주는 성물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므로, 성상이나

성화를 모셔 놓지 않은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신앙의 참되고 친숙한 모습을 익히기가 어렵게 된다』(교본 p.460).

준성사는 「인효적(人效的)」 은총을 갖는다고 한다. 준성사가 인효적 효력을 지닌다는 것은 준성사를 집행하는 사제나 그 준성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따라 받는 은혜가 다르다는 뜻이다.

성사는 「은총」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짐을 지우기 위해서 성사를 제정한 것이 아니고 그 짐을 덜어 주기 위해서 성사를 제정한 것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 28).

그러므로 성사의 불편함이나 번거로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성사를 통해 얻게 되는 무한한

은총을 볼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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