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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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가 올렸던 글이 교도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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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kr3217] 쪽지 캡슐

2013-03-29 ㅣ No.4119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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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을 속이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야곱이 아버지에게  

입맞춰주고, 아버지가 확신을 하고 축복을 주는 부분이거든요. 이부분을 보면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께 입맞춰주고 팔아넘기는 장면과 겹치더라구요.

이사악은 입맞춤하고도 몰랐고, 예수님은 입맞춤을 하기도 전에 그 의도를 알았

다는 차이점은 있습니다. 언뜻보면 서로 친밀감을 표현하는 입맞춤을 속이는

방법으로 쓴 것이 비슷하여 올립니다.

두 장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니면 별로 상관이 없고, 유다인들의 생활일까요?
 

 

당시 유다인들은 우정과 존경의 표시로 상대의 이마, 볼, 어깨, 손등, 발등 같은

데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악은 야곱에게 입을 맞추어 달라고

청하였고 유다는 우정과 존경의 입맞춤을 스스로 배반의 입맞춤으로 바꿔버린

경우이고 두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이사악이 정말 모르고 축복을 주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묻고 답하기에는 묵상으로 답을 드리기가 곤란하군요.

그래서 한 가지만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야곱이 입맞춤을 했지요?

각 사람의 냄새는 다릅니다. 그런데 이사악은 야곱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고

축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복을 빌어준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어머니 레베카가 그의 형 에사우의 옷을 입혀 주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묵상해 보시면 좋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6, 28 이사악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여 에사우를 사랑하였고, 레베카는 야곱을

사랑하였다."부분에 보면, 고기 때문에 에사우를 사랑했다는 표현이 나오고 27,

28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 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축복을 해주는

것이 농부에게 해주는 형식이네요. 어쩌면 에사우에게 축복해주는 코멘트는

아닌 것처럼 보이네요. 이 두 문장 때문에 이사악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시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성경은 요한복음사가가 말씀하시듯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고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5)는 말씀처럼 일일이 다 기록

하지는 않으셨다고 봅니다. 우리들이 일상 안에서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는

일들은 생략되었는데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경의 행간과 행간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이 내용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밭에 묻힌 보물에 비유해서 말씀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밭을 가는 사람, 곧 열심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그 밭에 뭍힌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보이는 문자만 가지고 다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 이사악이 눈이 어두워졌다는 표현 안에서는 사람은 한 기관이

약해지면 다른 기관이 발달함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눈이 어두워졌

으면 귀가 발달한다던가 또는 후각이 발달한다던가 합니다.

 

그렇다면 평소 에사우의 남성미 넘치는 팔을 쓰다듬었을 이사악이 염소의 털과

에사우의 털을 만져보고 감각으로 몰랐을까? 이런 틀 안에서 묵상해 본 것이고

더 중요한 대목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과정에서 하는 말 안에서

어떤 고백을 본 것입니다.

 

창세 48장 19절입니다.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알아." 이 부분입니다.

이때에 야곱은  아버지 이사악처럼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서 앞을 볼 수 없었다

(창세 48,10)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육적인 눈이 어두우면 반대로 발달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인

눈이 밝아 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받아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생각하고 묵상해 본 결과로 모르고 준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상한 주장을 내세운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셔서 여기에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야곱의 축복 이야기는 장자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바로 알 수 있는 부분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는 순서에 따라 무조건 하느님의 장자권이 세습이

되는 것이 아니고
축복을 받으려는 열망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묵시 1,5) 곧 준비되지 않으면 우리도 이러한 일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결국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기에 그 축복이

이방인들에게 등잔대가 넘겨졌던 것입니다.

 

결국 에사우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에사우는 맏아들의 권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람입니다.(창세 25,34 참조)

이러한 에사우의 사람됨을 이사악이 몰랐을까요? 이사악이 육적인 눈은 비록

어두워졌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반대로 영적인 눈이 밝으셨다고 봤을 때에 두

아들이 각기 하느님에 대한 열망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었다고 묵상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요상한 주장인가요?


이사악이 모르고 축복해 주었다고 하는 의미 안에는 엄청난 사랑이 담겨져 있음을

저는 보았습니다. 에사우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가 모르고 한 일이어야 그래도

큰 아들 에사우가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에사우를 사랑했던 이사악이 에사우가 상처 받을 것을 염려했던 그 큰

사랑을 느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묵상방에 올려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그동안 묵상방, 자유게시판, 성경묻고답하기 등에 글을 올린 이정임 글라라입니다.
저의 글이 가톨릭 교도권에서 가르치는 부분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는지요? 아니면 어느 곳에 문의를 해야 하는지요?

저는 소순태 형제님께서 늘상 제 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하셨고,
또한 저는 내세울 학벌도, 전공도, 내세울 직업도 ... 등등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쓰는 글은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동안 통신으로 공부했지만 성바오로딸 수도회 통신 성서 8년을 졸업해서
성서 봉사자 자격증도 얻었으며 가톨릭 교리신학원 6년 올해 졸업을 합니다.
성적도 우수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성경도 여러차례 통독도 했으며 꾸준히
묵상도 해 왔습니다.

정말 소순태 형제님께서 지적하시는 내용대로 제 글이 교도권에서 가르치는 바와
다르다면 저는 다시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잘못 알고 있다면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굿뉴스에서 제 그동안의 글을 검토해 주실 수 없으시면 어느 곳에 문의를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실 수는 있으실 것 같아서 문을 두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굿뉴스에 글을 올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약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소순태 형제님께서 제 글에 이의를 제기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대로 한번 배워볼까 합니다.

제 글이 이렇습니까? 소순태 형제님의 답글입니다.
"요상한 주장" = "이상한 주장" 입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요상하다" 하는 형용사의 설명을 확인하도록 하십시오: http://124.137.201.223/main.jsp

감사합니다.


운영자가 일일이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 주실 수 없음도 잘 압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제가 알지 못하니 그래도 굿뉴스 정도면 이런 문제는 어디서
상담할 수 있는지 정도는 알려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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