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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6년 2월 21일 (토)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가톨릭 성인/축일
    성 세베리아노 (Severian)
    같은이름 세베리아누스 , 쎄베리아노 , 쎄베리아누스 , 세베리안
    축일 2월 21일
    신분 주교 , 순교자
    활동지역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
    활동연도 +453년경

       성 세베리아누스(Severianus, 또는 세베리아노)는 5세기 스키토폴리스(오늘날 이스라엘 북부의 베트셰안[Beit She’an])의 주교로 451년에 개최된 제4차 칼케돈(Chalcedon) 공의회에 참석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데 힘썼다. 이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욥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인 에우티케스(Eutyches)가 주장한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을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에게는 오직 하나의 본성, 즉 인간이 된 신성(神性)밖에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마치 바다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다에 녹아버리듯 인성(人性)이 신성에 흡수되어 신성만 남았기 때문에 인성은 실재(實在)로서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인간적 실재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란 두 본성이 있으며 혼동되거나 분리되지 않아 하느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두 본성의 유일하고 동일한 주인이시라고 선포하였다.

       하지만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단성론 이단은 동방 교회에서 급속히 확산하였다. 그로 인해 교구마다 이단과 정통 교회 간의 싸움이 치열했고, 서로를 단죄하는 등 무질서한 상태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팔레스티나의 수도자들 대부분은 공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였으나 에우티케스를 추종하는 일단의 수도자들은 끝까지 수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대표자는 비타협적이고 광신적 성격을 지닌 테오도시오스라는 수도자였다. 그는 그리스도 단성론을 지지하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408~450년 재위)의 미망인으로 예루살렘에 정착한 에우도키아 황후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유베날리스(Juvenalis)를 추방하고 자신을 그 자리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새로 황제직에 오른 마르키아누스(450~457년 재위)의 개입으로 2년 만인 453년에 테오도시오스가 추방되고 유베날리스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테오도시오스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있는 동안 성 세베리아노를 비롯해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박해를 받았다. 끝까지 이단으로부터 자신의 교구를 지키려고 했던 성 세베리아노는 테오도시오스 추종자들에게 붙잡혀 도시 밖으로 끌려가 무참히 살해당했는데, 452년 말이나 453년 초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21일 목록에서 팔레스티나의 스키토폴리스에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세베리아노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의 이름을 더는 기록하지 않았다. 성 세베리아노의 전기는 스키토폴리스의 키릴루스라는 수도승에 의해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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