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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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파코미오 (Pachomius)
같은이름 빠꼬미오 , 빠꼬미우스 , 파코미우스 축일 11월 25일 신분 주교 , 순교자 활동지역 이집트(Egypt) 활동연도 +311년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26일 목록에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주교인 성 베드로(Petrus)가 311년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305~311년 재위)의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고, 사제인 성 파우스토(Faustus)와 성 디디오(Didius)와 성 암모니오(Ammonius)가 함께 고난을 겪고 순교했다고 적었다. 또한 이집트의 주교인 성 필레아스(Phileas)와 성 헤시키오(Hesychius)와 성 파코미우스(또는 파코미오)와 성 테오도로(Theodorus)가 660명의 다른 이집트의 그리스도인 동료들과 함께 순교했다고 했다. 한편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25일 목록으로 옮겨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모든 덕을 지닌 인물로 존경받으며 성경에 대한 학식으로도 유명했던 성 베드로 주교가 311년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갑자기 처형됨으로써 이집트에서 305년부터 계속된 엄청난 박해의 마지막 희생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집트의 다른 세 명의 주교인 성 헤시키오와 성 파코미오와 성 테오도로가 순교했는데, 이날 그들뿐만 아니라 305년부터 이집트에서 계속된 박해로 인해 순교한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을 함께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성 베드로는 이미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의 박해 당시 젊은 사제로 활동했고, 성경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지녀 알렉산드리아 교리학교의 교장이 되었으며, 300년에는 그 도시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11년의 주교 재임 중에 아리우스(Arius) 이단과 오리게네스파와 맞서 투쟁했고, 오랜 박해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며 고문을 못 이겨 배교하거나 신앙에서 멀어졌던 신자들이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썼다. 그는 배교자들을 비교적 관대하고 온유하게 대하며 그들이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했는데, 그로 인해 엄격하게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성 헤시키오와 성 파코미오와 성 테오도로와 성 필레아스 주교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다행히 성 베드로 주교는 체포되지 않았고, 306년 다시 박해가 일어나자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잠시 피신하였다. 그동안에 이집트 교회는 황폐해질 정도로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311년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새로운 박해가 갑자기 일어나면서 성 베드로 주교도 체포되어 기소나 재판도 없이 참수형으로 처형되었다. 그와 함께 이미 체포되어 감옥에 있던 다른 세 명의 주교도 순교의 대열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같은 박해 중에 그의 사제였던 성 파우스토와 성 디디오와 성 암모니오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는데, 개정 “로마 순교록”은 이들 세 명의 신부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9월 8일 목록에서 별도로 기록하였다. 그 외에 옛 “로마 순교록”이 11월 26일 목록에서 언급했던 이집트의 성 필레아스 주교에 대해 개정 “로마 순교록”은 2월 4일 목록에서 호민관이었던 성 필로로모(Philoromus)와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참수형을 당해 순교의 월계관을 얻었다고 따로 기록하였다.
성 필레아스는 원래 로마군의 장교로 훌륭한 학식과 분별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매우 부유했으며 이미 결혼해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다. 4세기 초에 그는 하부 이집트의 고대 도시인 트무이스(Thmuis)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체포되어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 때까지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감옥에서 자기 교구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으며, 알렉산드리아에서 고통받고 순교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적었다. 그는 재판을 받으면서 아내와 자녀, 형제와 친척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 순교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가 재판받을 때 참석했던 호민관 성 필로로모는 그의 신앙과 용기를 존경해 소리높여 그를 칭송하였다. 결국 성 필로로모 또한 친척과 친구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목숨으로 신앙을 지켜 주님으로부터 승리의 월계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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