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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0년 9월 24일 (목)연중 제25주간 목요일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가톨릭 성인/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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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가브라 미카엘 (Gabra Michael)
    축일 9월 1일
    신분 신부 , 순교자
    활동지역 에티오피아(Ethiopia)
    활동연도 +1855년

       1790년경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가브라 미카엘은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하지 않은 에티오피아 교회의 수도원장으로 높은 성덕과 학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1839년 빈첸시오회의 에티오피아 선교단의 일원으로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성 유스티누스 데 야코비스(Justinus de Jacobis, 7월 31일) 신부는 그를 만났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에티오피아 교회의 대표로 교황을 알현하러 로마에 가자고 초대하였다. 로마 방문 중에 큰 감명을 받은 그는 1844년 50이 넘은 나이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 후 그는 성 유스티누스 데 야코비스 신부를 도와 에티오피아인들을 교육하여 방인사제를 양성하는 것을 비롯하여 그들의 필요에 맞는 교리서를 저술하였다. 또 각종 신학서적들을 번역하고 대학도 설립하였다. 그러나 가브라 미카엘을 임명했던 에티오피아 교회의 수장 아부나 살라마(Abuna Salama)의 주장으로 그들은 추방형을 받고 마사와(Massawa) 섬으로 쫓겨났다.

       이곳에서 성 유스티누스 데 야코비스 신부는 주교로 서품되었고, 비밀리에 에티오피아로 들어와서 그의 첫 번째 주교 직무 수행으로 1851년 가브라 미카엘을 사제로 서품하였다. 그들은 함께 활동하며 자신들을 쫓아냈던 에티오피아 교회 사람들까지도 개종시키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본 국왕은 가브라 미카엘과 4명의 동료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사형 언도를 내렸다. 다행히 영국 영사의 중재로 목숨은 건졌으나 국왕의 명령으로 쇠사슬에 묶인 채 다른 감옥으로 옮겨야 했다. 콜레라에 걸렸다 겨우 회복된 그는 소량의 음식마저도 다른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나누었고, 그를 감시하던 간수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1855년 8월 28일, 마침내 그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길가에 쓰러져 생을 마감하였다. 간수는 정중하게 쇠사슬을 제거하고 그의 시신을 매장하였다. 그는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순교자로서 복자품에 올랐다. 그는 게브레 미카엘(Ghebre Michael)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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