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
(녹) 연중 제11주일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강론자료

2024-05-19.....성령강림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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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05-23 ㅣ No.2448

                                             성령강림 대축일 (나해)

사도행전 2,1-11      코린토1서 12,3ㄴ-7.12-13      요한 20,19-23

2024. 5. 19.

주제 : 하느님이 주시는 성령의 선물

오늘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힘이신, 성령이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기 위해서 내리신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오신 날로 기억하는 성령강림은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예수님의 승천으로부터는 열흘째 되는 날 하늘에서 우리에게 오신 일로 셈합니다. 하느님의 힘인 성령이 사람들을 찾아서 내려온 성령강림 때는 히브리민족이 겨울을 지내고 밀을 거두어들이는 때이며, 한 해를 먹고 살게 하는 일에 힘이 된 곡식을 베푸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때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힘이신, 성령을 보내셨을까요?

 

우리나라 연세대학교의 교훈(敎訓)에는 라틴문자로 쓴 글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쓰인 글자를 읽으면, '베리따스 리베라빗 보스'라고 돼 있는데, 거기에 쓴 ‘베리따스’가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을 가리킨다고 알고 썼을까요? 아니면 성경에 나오는 멋있는 표현이라서 신앙에 관련된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쓴 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그 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를 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면 좋은 일입니다.

 

성령께서 사람의 삶에 내리신 날, 하느님의 선물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성령강림의 때가 되면 사람이 하느님의 선물은 나에게 온다고 하는데, 그 선물을 받은 나는 어떻게 사는 모습이 옳다고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이에 관한 생각을 바르게 하려면, 내게 오는 하느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다고 하지 않을 돈에 관한 것이라면, 만족한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잘못이라고 하면,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방법은 있을까요? 신앙에서 말하는 성령의 선물은 흔히 일곱 가지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힘과 뜻이 사람에게 적용되는 설명으로 만든 표현이겠지만, 세상에서 우리가 쓰는 의미와는 무엇인가 다른 뜻으로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움으로 설명한 것이 옛날부터 말한 성령의 선물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카드를 만들어 넣고, 선택해서 내게 올 은총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택하는 일보다는 스마트폰의 빈칸에 이름과 세례명을 넣고 ‘엔터’를 치기만 하면 답을 볼 수 있는 편한 세상이 되었지만,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만난다고 생각할까요? 혹시라도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하고, 그래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번 더 하여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하면 그것이 나에게 올 선물이 될까요?

 

오순절이 되었을 때, 성모님과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있던 한 다락방에 모여 있었고,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각 사람의 위에 내려앉았다고 사도행전은 그날의 모습을 전합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주신 표현의 능력대로 제자들은 일찍이 공부한 일이 없었을 여러 가지의 외국말로 ‘하느님의 위업’을 말했다고 사람들은 알아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알고 베푸시는 사랑의 선물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큽니다. 오늘 독서에는 제자들이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 그 내용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만, 내가 어떤 말을 하면 하느님의 놀라운 위업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거부하는 마음을 앞세울 수도 있지만, 그 행동은 사람이 드러내는 행동이니, 하느님께서 나를 통하여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과 똑같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은 여러 가지라고 바오로사도는 코린토에 살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신 날에 주신 선물은 ‘평화’였습니다. 이 평화는 나만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신앙인이 드러내야 하는 좋은 모습이라면, 다른 사람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선물을 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잠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를 청하며 기도할 시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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